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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ul 18. 2023

서까래 계약서

젖은 앞산 낮게 내려앉았다. 공중에 잠자리 떼 지어 난다. 제비 한 무리 뒤를 쫓는다. 날개 접지 못하는 잠자리 비행능력만큼은 최고라는데, 웬만한 새들도 못한다는 후진 비행까지 할 수 있다는데. 곡예비행 능한 제비 얽혀 한바탕 전투 벌이다 흩어진다.


날던 제비 한 마리 내 방 처마 기웃댄다. 빈 집에 둥지 틀지 않는 제비 사람 든 걸 알았을까. 서까래 주변 맴돌며 지지배배 지저귄다. 또 한 마리 날아든다. 전깃줄 타고 앉아 고개 짓 하더니 V자 꼬리 흔들며 사라진다. 제비 부부 안전 점검 끝내고 서까래 위 터 잡았다. 물고 온 진흙 처마 끝에 찍는다. 두 마리 번갈아 들고 날며 기초공사 다진다. 에헴, 헛기침 소리에 설핏 눈 맞추고 태연히 돌아선다. 천적 막아줄 사람이라 여기는가. 


강남 갔던 제비 오지 않는단 소식 심심찮게 들려온다. 일구팔칠 년부터 십 팔 년 간 개체수 백분 일로 줄었단다. 지구생명보고서 이유를 밝혀준다. 먹이 줄고 오염되고 콘크리트 구조물들 제비를 몰아냈다. 서울시 귀한 제비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천연기념물 될 날 머지않았다 추측한다. 떼 지어 찾아온 제비 무슨 바람 불었을까. 옛 집 서까래 살려두길 잘했다. 


짤짤대며 회관으로 달려간다. 가스 불 위 양은솥 걸러낸 팥물 끓는다. 여름 맞이 팥죽 잔치다. 밀가루 반죽 밀다 팥알 같은 말 툭 터진다. 

“우리 집에 제비 왔어요.” 

“못 써. 똥 싸고 이 많아.”

반죽 썰듯 단칼에 잘렸다. 제비 오면 복 굴러 들어온다는 말 옛날 옛적 얘기. 어디서는 대우받고, 어디서는 내 쫓기고. 먼 길 찾아와 찬밥신세 따로 없다. 


자랑 끝에 불붙었다. 어른들 하던 말 귓전 맴돈다. 집 밖으로 엉덩이 돌리고 싸는 똥 바람 불면 창문으로 날아들겠다. 밥 달라 한꺼번에 울어 젖히면 시끄럽겠다. 걸쭉한 팥죽 먹는 둥 마는 둥 헐레벌떡 달려온다. 흙 발라놓은 자리 의자 놓고 올라 비닐 가린다. 접착제 제비 침 발라 이겨 붙여도 붙지 못하리. 사람이 천적보다 무섭다.      


터 잃은 제비부부 여기 갸웃 저기 갸웃 맴돌다 돌아선다. 가진 자 유세 떨 듯 꼼짝 않고 지켜본다. 작아도 강남 간다더니 포기 않고 날아든다. 집 짓는데 일주일, 알 낳고 부화하는데 보름, 둥지 떠날 때까지 이십일, 대략 한 달 반. 이 마을에 날아든 나도 철새이긴 마찬가지. 텃새들 내준 자리 둥지 튼 마당에 텃세가 웬 말이냐.


야박한 사람인심 소문날까 두렵다. 막아놓은 비닐 단박에 거둬낸다. 네가 있어야 내가 살고, 네가 살아야 내가 있는 자연의 이치는 더불어 공존이다. 임차인 제비부부, 임대인 안전지킴이. 서까래 계약서에 눈도장 찍는다.  제비부부 미끈한 전신곡선 흔들며 날아든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랫소리 청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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