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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Apr 01. 2024

판타스틱을 큐브하다

부천 독립영화 전용관 

   

시청에 갔다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발견했다.  포스터는 판타스틱큐브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민원실에서 시의회로 가는 길목에 있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한때는 흔히 접하지 못하는 영화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해 자주 찾았지만 밀폐된 공간을 기피하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독립영화 전용관인 큐브는 부천시청 일층에 판타스틱큐브도서관과 나란히 붙어 있다. 이곳에선 매해 열리는 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기간 뿐만 아니라 영화제가 끝나고 난 후에도 일 년 내내 필름이 돌아간다. 피판의 특징인 호러·스릴러·SF 등의 장르영화보다 나는 큐브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더 좋다. 


여러 장의 포스터 중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이 은퇴작이란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그의 영화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내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볼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을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해하듯 표를 끊고서도 앞서 보았던 그의 영화들처럼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기 만을 바랐다.


영화는 영국 북동부지역에 시리아 난민이 유입되면서 시작된다. 석탄과 철강을 캐던 ‘더램’은 새로운 산업이 뜨면서 버려지다시피 한 도시다. 내전으로 인해 자신의 터전을 잃은 자들이나 광부로서의 터전을 잃은 이들 역시 난민이나 다름없다. 술집 ‘올드 오크’는 폐광촌을 떠나지 않거나 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공동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동시에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공유하면서 그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곳이다. 융합하기 어려운 두 공동체가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서히 연대하는 장소로 변해간다. 연대란 서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행위라는데 같은 공간에서 다른 공동체가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루쉰은 희망이란 길처럼 만들어지거나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길이 생기듯, 생각을 공유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희망이 생겨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고민해 보는 것도 희망 앞에 한 발 다가가는 게 아닐까.  


영화가 끝났다. 객석을 둘러보니 치아가 다 빠져나간 입속 같다. 이 좋은 시설에 고작 열 명 남짓이라니. PiFan의 열기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멀리 갈 것 없이 연대의 힘이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핸드폰을 열어 캡처한 상영시간표를 단톡방에 뿌려댔다. 부천시민은 오천 원, 타지역민은 칠천 원, 하루 세 번 상영이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판타스틱큐브영화관으로 오시라. 환상적인 세계를 몇 배로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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