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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소극장 공연의 리허설이 아니다 • 세종문화회관이다

by 잠시 동안

나는 차 추돌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그때 느낀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이후의 긴 재활 과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이었다.

몸이 이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 순간부터 세상이 나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디에서든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번 사건의 뉴스를 접했을 때,
성악가 안영재 씨의 고통이 그저 안타까운 비극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아픔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몸이 다쳤다는 이유로,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난다는 현실.
그 절망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성악가 안영재 씨(30)가 지난 10월 21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사고 발생 후 2년 7개월, 긴 투병 끝에 찾아온 비극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 공연예술계의 구조적 문제 — 안전 불감증, 제도적 사각지대, 공공기관의 책임 회피 — 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22년 3월,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리허설 중
성악가 안영재 씨(30)가 천장에서 떨어진 400kg 철제 무대장치에 맞았다.
그 결과, 그는 외상성 척수 손상을 입었고
보행이 불가능해졌다.

성악가에게 호흡과 발성은 생명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그는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공공 공연장 내에서 벌어진 중대 안전사고였다.

사고 이후 안영재 씨는 프리랜서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프리랜서는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프리랜서 예술인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7.3%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억대의 병원비와 재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공연을 주관한 민간단체와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은 책임을 떠넘겼다.
“정해진 동선을 지키지 않았다.”
“사고 장소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생명을 지키지 않았다.


비슷한 사고가 미국의 공공 공연장에서 발생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연 현장에서의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OSHA(산업안전보건청)이 즉시 조사에 착수한다.
무대장치나 조명, 장비 관련 사고는 산업재해로 분류되며
공연장 운영 주체는 법적으로 안전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공연예술 노동자는 노조(Union)에 속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보험(Workers’ Compensation)이 자동으로 적용되고,
치료비·재활비·보상금이 지급된다.
만약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라면
수백만 달러의 손해배상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는 “프리랜서라서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은 법이 지켜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문화회관 사고는 불운이 아니라, 시스템이 ‘프리랜서’라는 명목을 방패 삼아, 한 개인을 버린 구조적 실패였다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중심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무대 뒤에는
여전히 불안정한 계약과, 불완전한 안전망 속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국가의 명예’를 위해 예술을 소비하면서도,
그 예술가의 생명에는 무심한 사회.
공연을 주관한 공공기관조차 책임을 회피하는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법이 시스템을 지키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이 시스템을 대신 견뎌야 한다.
그 차이가 바로 ‘선진국’과 ‘비선진국’을 가르는 경계일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사고가 벌어진 지 2년이 지났다.

또 다른 안영재가, 또 다른 무대 위에서
다치고 무시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예술인의 생명을 보호할 시스템,
공공기관의 명확한 책임 구조,
그리고 사고 이후의 투명한 절차가 절실하다. 공연이 끝나면 조명은 꺼진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 있다.

“누가 예술가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

장애인으로서, 또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안타까움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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