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야 오늘은 Nov 25. 2022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_2

 문자를 받은 날로부터 딱 두 달 전쯤,


  엄마는 남자 친구와 친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한동안 연락을 해왔. 1년 정도 동거를 하고 있는 남자 친구가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것과 그가 그녀의 주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자신과의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에 대한 내용은 1년 전부터 꾸준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홀몸으로 나를 키우는 엄마에게 기댈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좋은 사람 있으면 재혼하는 게 어떻냐고 항상 말해온 나였기에, 처음에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서로 마음이 맞고 그가 엄마에게 잘한다면 만나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고민들로 내게 걸려오는 두 세 시간짜리 전화를 몇 번이나 받고 난 뒤부터는 그녀가 단지 그를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둘의 성격이나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관계가 긍정적으로 이어질 것 같지가 않아 빠르게 헤어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여러 번 듣고 만나본 결과, 그는 거짓말을 자주 하고 화가 나면 폭력적으로 굴며 자신의 이속을 채우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 대해 매번 이야기해주며 이별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헤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성격을 맞추고 사는 그도 대단했다. 그녀는 한 번 툼이 생기면 폭력적인 상황 없이도 경찰을 불러 그를 나갈 곳 없이 쫓아내곤 했고, 화가 나면 그와 다를 것 없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가 손을 올려 뺨을 치면 그녀는 발로 차 이빨을 부숴놨다. 그는 그럴 때마다 그녀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며 그녀의 화를 풀어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고는 또 한동안은 너무나  지내는 것이다. 그를 쫒아내 달라고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본가로 가서 그에게 화를 내고 내보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그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해놓고도 뒤돌아서면 이런 사람 또 없다며 자신에게 관심 없는 나 때문에 힘든 거라고 나를 원망하곤 했다. 그게 계속 반복되자 나는 결국 그들의 연애사에 관심 갖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 엄마지, 나의 자식이 아니지 않은가. 돈봉투를 던져주며


'우리 엄마랑 헤어지세요.'


이럴 수도 없고 자녀로서 부모의 연애에 일일이 관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와서는 이번에야 말로 헤어지려는데 그가 집 문을 자꾸 따고 들어와서 경찰에 신고를 자주 했더니 이제 경찰이 자신의 신고를 허위신고로 알고 잘 도외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가 그녀의 휴대폰을 뒤져 그녀의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했으며 만난 뒤에는 집에 와서 '그 년들이 당신을 이렇게 말하더라'는 식으로 말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보다 친구들에게 더 분노를 표출했다.

  애초에 그 친구들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그녀에게 우울증을 안겨준 들이었다. 그들은 그녀 청소년이었을 때부터 봐온 친구들이었지만 앞에서는 제 살 같이 굴고 뒤에서는 그녀를 모욕하기 일쑤였고 끝에는 말도 안 되는 누명까지 씌웠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나를 키워야 한다는 압박이 더해져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사건 이후로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습처럼 자신을 죽이려들었다.

  최근 이때까지 이를 갈며 원망하던 이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기에 나는 역시나 몇 번이고 만류했다. 하지만 자신은 예전처럼 순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가까이 두지도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상처받은 이들은 다신 안 그럴 것이라고 각하면서도 자신을 비슷한 상황에 노출시킨다더니 그녀의 행동이 딱 그랬다. 듣다 듣다 보니 이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게 맞는 것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그런데 그게 다 스스로 자초하는 거라면?'


 내가 보기에 그녀는 매번 스스로 원인을 제공하고 그 구렁텅이에 들어가곤 했다. 물론 피해자에게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안다. 왜 모르겠는가. 아무리 미워도 그녀는 내 엄마인데. 하지만 나는 이제 그녀가 진정 피해자가 맞는 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내가 보기에 그녀가 겪는 일들은 자연재해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까웠다. 잡아먹힐게 빤히 보이는데 호랑이 굴로 몸소 들어가는 격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속을 뒤집어놓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날마다 고민으로 시작해 원망으로 끝나는 전화를 받으며 시달려야 했고 또  점점 지쳐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를 받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전날 밤에 내내 전화에 시달린 뒤 출근 전 30분에 울리는 알람에 눈을 떴다. 물 먹은 솜 마냥 몸이 무거웠다. 급히 택시를 불러 학원에 갔고 잡생각을 떨치고자 수업에 열중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수업을 끝내고 집에 걸어가는데 이 시간만은 밀려오는 잡념을 잊을 방도가 없었다. 집이 이렇게 멀었던가. 다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숨이 차올라 하리가 굽었다. 어디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말없이 걸으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고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야겠다 싶어 그나마 내 상황을 이해할 거라 믿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기음이 두 번 넘어가자 수회기 너머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며칠간 엄마가 내게 건 전화의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하며 운을 떼었다. 딱히 큰 위로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힘들었겠다는 한 마디와 그 뒤로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몇 마디가 필요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더 힘들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나이 들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느그 엄마 때문에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으니 점점 가슴속이 뜨거워졌다. 열기를 빼내려는 듯이 입을 벙긋거렸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내 입으로 나오지 않던 뜨거운 것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걸으면서 마스크 틈새로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걸었다. 결국에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해보고 '힘들었겠네' 하고 맞장구칠 뿐이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침대에 그대로 엎어져 잠시 잠이 들었다. 3시간 정도 잤을까. 눈을 떠보니 집이 캄캄했다. 해가 져서 창 밖의 희미한 불빛만 보였다. 시간을 보려고 폰을 봤는데 엄마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 나라에서 장례 치러줄 거다. 기자에게 고양이들 부탁한다고 써놨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문자 남긴다...


익숙함에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항상 자살도를 하기 전 내게 보내는 문자였다. 그 문자를 보자마자 전신의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며 지금까지 봐왔던 많은 자살시도들과 그때마다 내가 감당해야 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내가 말려도 매번 내 눈앞에서 자살 시도를 했고 살려놓으면 왜 살렸냐며 나를 원망했다. 그러다 한 번은 뛰어내리겠다고 해서 밤새 말리다가 잠시 잠든 사이에 뛰어내려 허리와 발뒤꿈치 뼈를 다 부숴놓기도 했다. 학교도 못 가고 병실 간이침대에서 뭄을 구겨 자고 소변통을 갈고, 밥을 떠먹여 가며 간호했으나 돌아온 것이라고는 사람들 앞에서 '지 엄마 죽는다는데 죽으라고 방치했다.'질러대는 고함과 손가락질뿐이었다. 그것들을 떠올리며 어두운 방에서 한참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번에도 약을 먹고 죽겠노라 한다면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죽을 테니까. 

  간신히 진정하고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자신이 죽고 난 뒤의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으며 락스를 세 통 사두었다고 말했다. 그걸 마시고 이번에는 꼭 죽겠노라고.

  나는 이럴 때마다 그것을 굳이 굳이 내게 말하는 그녀의 저의가 궁금했다. 사실은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건 아닐까. 진짜 죽고 싶다면 내게 알리지 말하야하는 게 아닌가. 어째서 나를 매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밀어 넣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그저 회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녀를 말릴 수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내가 잘 돼서 효도하겠다고, 보란 듯이 잘 살아서 나 자식 잘 키웠다 하면서 떵떵거리는 게 최고의 복수라며 그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 말도 결국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어떻게든 할 말이 있었는데 이제 나에게는 그런 할 말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있었고 그녀는 모든 문제의 끝에는 항상 나를 원망했으며 나도 그녀를 지겹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는 모습을 가서 지켜보게 되느니 차라리 아무 곳에나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새어나가지 않는 비명을 질러대다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다.




  할머니는 매정한 사람이다. 내가 14살일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단 한 번을 와주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나를 도와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자 말리고 혼자 구급차를 부르고 혼자 응급실에 가야 했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는 그런 일이 생겨도 할머니에게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도와주지 않는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더 감정이입이 돼서 얼마나 지쳤으면 그렇겠나 하고 이해했다. 할머니는 그녀의 엄마로서 힘든 것을 내게 털어놓곤 했고 나는 그녀의 딸로서 힘든 것을 이야기하곤 했다. 엄마 집에는 안 가도 할머니 집에는 몰래몰래 갔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항상 애틋해하고 반겨했기에 감히 기대를 해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전화를 받은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할머니는 그저 모른다고 하셨다. 너무 힘들다고, 한 번만 같이 가주면 안 안 되겠냐고도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나는 모른다. 죽게 내버려 둬라.'


내가 상 치를 거냐고 묻자 역시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 뒤로 나도 할 말이 없어 허무한 정적이 이어지다가 한마디가 들려왔다.


'엄마 다이가. 니가 올라가 봐라.'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비참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인생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었. 조금만 버티면 결국에는 행복해지는 건 픽션이었다. 불행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붙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끈적이는 진흙탕 위였다. 한 발을 빼서 내딛으면 금세 그 축축하고 무엇이 있을지 모를 흙구덩이 속으로 다시금 빠져들었다. 그 일련의 행동들을 계속 반복하다 힘이 빠져 무거운 몸을 가만히 두면 기분 나쁜 것들이 허리춤까지, 가슴까지, 결국에는 목 끝까지 차올랐다. 기분 나쁘고 더러워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망각하고 싶을 지경이었으나 알고 보면 그게 내 마음이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공허함만이 가슴을 짓눌러댔다.













  1년 만에 글을 올립니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으나, 사실 1년이면 다 지나간 일이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글이 다소 무거운 이야기라 뒷 글을 써놓고도 한참을 올리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현재의 감정과 당시의 감정 사이에 괴리가 느껴져 묵혀두기만 했네요. 쓰던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요즘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 내릴려니 좀 이상하기도 했구요. 누가 보는가 와는 상관없이 브런치는 제 일기장이자 감정을 갈무리하는 도구인지라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쓰곤 했는데 최근 마음이 꽤 안정적이라서요. 뒷이야기가 꾀나 늦어졌습니다. (최근 보니 저는 좀 우울해야 글이 써지는 타입이더군요. ʕʘ‿ʘʔ)

  앞으로도 무거운 글이 없으리라 장담할 순 없겠지만 여러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지금 쓰는 이야기는 기억을 되살려 이어 쓰겠습니다. 몇 번째에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요즘 일들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_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