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가 생기기 이전
오래전부터 이곳에 군부대가 있었다.
간혹 이 길을 지나다니며 봐 왔는데 군부대가 곧 이전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어 흘려들었는데 그곳 주변으로 아파트가 지어졌고
지인 한 명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 집에 가 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가 우연찮게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부대가 이전하기 전이라
담 너머로 군인이 보초를 서는 모습이 아파트 건너 보이곤 했는데
몇 년이 지나자 완전히 사라졌다.
군부대는 꽤 넓은 면적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공원이 생긴다고 하여
아파트 주민들은 땅값이 오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좋아했다.
실제로 주민 대표가 사인을 받으러 다녔는데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내 한복판에 공원이 생긴다니 어찌 됐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시에서 시민을 위해 큰 공원을 만들어 주리라 기대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지어졌고
지하는 주차장으로, 지상은 아파트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작은 도로로 인해 불편하고 먼지도 많이 날려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시내 한복판에 지어진 아파트라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데다
어쨌든 주말마다 삐삐를 차에 태우고 학교까지 가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작게 놀이터가 있고 약간의 녹색 공간이 있긴 했만
아이들이 노는 곳이라 개를 운동시키기는 부족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텅 빈 아파트가 조금씩 채워질 무렵 우리도 그 아파트 땅을 밟았다.
우리 아파트의 뒷문으로 작은 문이 생겨 그 길로 나가면 바로 옆 아파트로 통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리의 산책 장소가 되었다.
나는 아파트 입주자보다 더 먼저 그 길을 알게 되었고 삐삐도 그곳을 좋아했다.
헌데 2 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에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 이외에 다른 아파트의 개들이 들어와 산책을 금한다는 내용이었고
심지어 이 아파트에 사는 개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아파트용 개 목걸이를 차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우리는 그곳으로 산책을 갈 수 없게 되었다.
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것이지만 도리가 없었다.
당장 갈 곳을 잃은 나는 실망스러웠고 늘 다니던 길을 어느 날 갑자기 못 가게 하니 삐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곳 주민이나 관리실 사람은 개를 끌고 나가면 목걸이부터 쳐다보며
자기 아파트 주민인지 아닌지 구분하려고 했고, 경비를 하는 사람에게 말을 들어야 했다.
남편은 분개하여 지적도까지 떼어 보면서 어디까지가 아파트 땅이고
어디가 공원인지 찾아봤는데 길로 지나가는 일부분 몇 군데 정도가 공원으로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속상해하던 중 그곳에 사는 지인이 떠올랐다.
처음 은행 직원과 고객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간혹 연락을 했었고
그녀가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녀는 직장에 나가므로 평일에는 만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주말이면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건너편에서 마주치자 설마 하며 얼떨떨했다.
일이 아닌 밖에서 주민으로 만난 것도 처음이고 처음에 못 알아보던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고
나 역시 반가운 마음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삐삐 줄을 바짝 잡아당기지 못했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삐삐가 그녀의 다리를 슬그머니 물었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녀가 괜찮다고 하여 헤어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서로 어! 하다가 헤어져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개에게 주사를 맞혔냐고 물어보는 전화였는데
다행히 그녀도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해해주면서
겁이 많은 개들이 사람을 무는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그녀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천만다행이었지만
그 일 이후 더욱더 산책길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녔다.
마침 그녀도 얼마 후 강아지를 입양해서 잘 기르고 있는데
그녀의 남편 역시 애지중지 강아지를 사랑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개를 데리고 사는 같은 입장에서 가끔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니는 병원도 소개받게 되었다.
(그런 즈음 삐삐 다리가 문제가 생겨 걱정을 하던 중에 그녀가 알려준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아파트 주변 산책길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녀가 기꺼이 목걸이를 받아 해결해주었다.
그 날 이후 삐삐와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그 아파트 산책길을 활보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녀는 삐삐와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미경 씨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