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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 Mar 05. 2024

산책을 마치고

연초엔 유독 느긋했고, 연중엔 다시 조급했고, 연말이 되니 달력 한 장 만을 남긴 게 아쉬워 마음이 요동쳤다.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작년과 비교하면 나는 변한 게 없이 그대로인데, 어느덧 해를 지칭하는 이름이 바뀌었다. 작년엔 계묘년이라더니 올해는 갑진년이란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면 괜한 의무감이 생긴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뭔가를 이뤄야 한다.'를 시작으로 '언제까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거쳐 끝없이 늘어지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굳건한 다짐은 사라지고,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그때부터는 예삿일이 아니다. 이제는 이룬 것들보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커 보인다. 혹여 버스를 놓치거나 내가 작성했던 글의 작은 오타라도 발견한다면, 금세 마음이 흔들린다.


마음이 산란하여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신문에선 날이 많이 풀렸다는데, 마음은 과거에 머물러서일까. 괜스레 마음도 몸도 시리다. 걸음 한 번에 한숨 한 번이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앞에 다다랐다. 발을 한걸음 내딛는다. 걸음마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어쩐지 기분이 한결 낫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숨을 돌리려 잠시 멈추니 그제야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1월의 하늘은 원래 이리도 맑았던가?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도 성에 차지 않아, 하늘을 품에 안아보았다. 구름이 쏙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이런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내 품에서 벗어난다.  이제 보니 구름도 시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잡았다고 한들 유한히 흐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붙잡으려는 걸 포기하고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그제야 한껏 구름을 눈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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