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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금붕어 Apr 04. 2024

마흔, 육아 휴직을 결심하다

출퇴근의 고단함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자차로는 3시간,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하는 날은 4시간씩을 매일 투자하며, 아니 길바닥에 버려가며 2년간 출퇴근을 해왔다. 라디오, 책, 잠, 핸드폰을 서로 돌려가며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꾸역꾸역 버텨냈다. 직장에서는 육아시간을 쓰기 위해서 근무하는 시간 동안 차 한 잔 마실 시간조차 아끼며 정신없이 일한다. 쌓여있는 일들을 뒤로 미루고 숙제처럼 퇴근을 한다. 지루하고 고된 퇴근길에서 탈출하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육아모드 돌입. 그리고 내일 출근을 걱정하며 쪽잠을 청한다. 잠귀가 밝은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벽 출근. 그렇게 2년.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도로 위에 빽빽하게 줄을 지어 이동하는 많은 차들을 보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 있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힘을 내게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버텨냈다. 내 몸과 마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을 못 본 척하면서.


퇴근 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셨고, 출퇴근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울었다. 몸도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쳤다. 더 많이 화내고 짜증을 내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안했다. 일과 육아 둘 다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괴로웠다.




휴직은 1년 동안 고민 한 후 정한 결정이다. 출근길에는 휴직을 다짐하다가, 퇴근길에는 그냥 계속 일을 해야지. 이런 마음이 1년간 반복되었다. 그러다 휴직을 결심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내 몸의 이상신호였다.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심장통증. 혹여나 휴직을 해도 증상이 계속되면 정밀진단을 받아보겠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휴직을 결심한 이유는 아무리 절약해도 마이너스인 통장. 이대로 계속 일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일을 멈추면 불안하겠지만 이대로 버티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고 미뤄두었던 꿈을 지금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을 거라는 조급함도 밀려왔다. 마흔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과 함께. 가장 결정적으로는 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였다. 둘째는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엄마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할 때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일하느라 못 갔지만 초등학교 입학식은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몇 개월간 버틸 수 있는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휴직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외치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쉼이 필요했다.




휴직을 하고 출근 행렬에서 빠져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아이들의 아침상을 차려주고 등굣길을 배웅해 주는 아침 일상. 처음에는 나도 가족들도 어색했다. 등교를 책임졌던 아빠의 아침 루틴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점점 엄마의 루틴에 익숙해지고 있다. 휴직하면 아침마다 영양가 있는 아침상을 차려줘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보다 약소한(계란프라이, 주먹밥) 아침상을 차려주면서 머쓱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침마다 울며 나를 배웅하던 둘째는 웃으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출근준비를 하며 아이들 등교도 챙겨야 했던 남편도 아이들이 준비를 더디게 한다고 짜증을  일이 없어졌다. 우리 가족의 아침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교 후 아이들을 책임져주시던 친정 부모님께도 여유를 선물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사위와 딸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되셨으리라. 딸이 휴직하고 있는 이 시간 동안만이라도 여유를 즐기게 해드리고 싶다. 사실 부모님은 나의 휴직을 반대하셨지만.


생전 써보지 않던 가계부라는 것을 꺼내 들었다. 한 달간 소비한 지출 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갑자기 불안함이 훅 끼쳐왔다. 다시 조기 복직을 해야 하나. 아이들 학원을 줄여야 하나. 부업을 뛰어야 하나. 그런 와중에 작년에 일했던 대가로 한 달간의 지출을 메꿀 만큼의 돈이 입금이 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잠시 안도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마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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