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 놓을 수 없는 것들
옷장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결혼 사진을 꺼내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결혼 초반의 행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 속의 우리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미소 지었지만, 이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후회와 아픔이 밀려왔다.
혼자가 된 후 나는 한동안 멍해졌었다. 감정을 밀어내고, 아픈 기억을 잠재우려 애썼지만, 과거의 흔적이 가득한 집은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겼다.
전처와 함께 찍은 사진, 액자 속에 넣어둔 아이들과 함께한 순간의 사진들, 한때 집의 일부처럼 느껴졌던 친숙한 물건들.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과 물건들에게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했고, 아픈 기억들을 마비시키려 했지만,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은 내 의지를 흔들었다.
이제 나를 짓누르는 것들을 정리해야 할 때라고 결심했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보관하고 전처와 나만 함께 찍은 사진은 없애기로 했다.
그렇게 두분류로 나눈 사진들과 앨범들을 쓰레기 봉투에 다 넣어 버렸다.
이제 나만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을 깔고, 인테리어 필름을 붙이며 주말마다 공허한 시간을 일로 채워 나갔다.
LED 조명도 달고, 강화 마루 코팅도 유튜브를 보며 하나씩 배워갔다.
집안이 조금씩 변해 갈수록 이곳은 더 이상 과거의 터전이 아닌, 나와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되어 갔다.
그렇게 주말마다 인테리어 작업으로 공허한 시간을 채워가며, 마음의 여백을 조금씩 메워나갔다.
큰아이와 함께하는 주말의 시간도 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와는 매주 주말마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조용히 서로의 시간을 보냈다.
큰아이가 책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또한 내 시간을 찾고 있었다.
대화는 많지 않았어도, 서로의 곁에 앉아 있는 그 순간들이 내게 깊은 안정감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상처들도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그들의 성취 속에서 위로받고 있었다.
주말마다 큰아이와 함께하는 책 읽는 시간, 작은아이와의 대화들이 내게 더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어쩌면 여전히 놓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미련이 나를 무겁게 누르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과거를 품은 이 공간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놓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추억들로 이 집을 채워가면서, 내 삶 또한 차곡차곡 다시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