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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통제 대신 방향을, 분노 대신 기다림을

by 안전모드


나는 전자담배 냄새에 유난히 예민하다.
길에서, 화장실에서, 누군가 곁에서 전자담배를 피우기라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어느 날부터인가 딸2의 방에만 들어가면 그 특유의 두통이 따라왔다.


익숙한 듯 낯선 전자담배 냄새 같은 기운.

설마, 하며 내 감각을 부정했다.
“설마 방에서 전자담배 피는 건 아니지?”

"아니야~ 아빠 땀 냄새 나서 방향제 뿌렸어."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두는걸 보면서도, 나는 끝내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머리는 계속 아프고, 후각은 날이 서 있었다.
내가 느낀 건, 분명 전자담배의 그것이었다.


어느 날, 딸2가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문득 스쳐간 생각.
‘가방을 한 번 봐야겠다.’

그렇게 방에 들어가 조심스레 가방을 열고, 필통을 확인했다.

전자담배 하나. 라이터 두 개.


아—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딸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딸의 침대를 거실로 옮기고, 캐리어를 꺼내 문 앞에 두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딸에게 말했다.
“전자담배 다시 샀구나. 이 정도면 그냥 장난이 아니라 제대로 피는 거구나.
아빠는 이제 너를 믿지 못하겠다.

오늘은 엄마 집에서 자. 엄마한테 전화해~ 아빠는 오늘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딸은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아니야.”
엄마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다른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운동도, 독서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딸에 대한 실망, 그리고 무력감. 그게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나의 작은 결론은

딸의 휴대폰을 5일간 정지했고, 거실에서 잠을 자게 했다.
통금시간은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나는 두 딸을 홀로 돌본지 1년6개월즈음 되었다

평일엔 딸2의 아침과 저녁식사를 챙기고
전처는 한 달에 한 번, 2~3시간정도 아이들과 함께 보낼 뿐이다.
1년이 넘도록 아이들과 외박을 해본 적도 없다.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하루 보내보면 어때?’ 톡을 보냈지만,
“지금은 바빠서 안 돼. 시간이 되면 할거야
답은 늘 같았다.

딸2 친구 어머님께 면담 요청도 드렸지만, 약속 이후 연락은 없었다고한다
기대한 건 나 혼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기대하지 말자.
기존의 규칙을 다시 세우고, 그 안에서 딸이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자.
그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문득 떠오른 과거.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전처의 모습.
거실 환풍기 아래에서 아이들 앞에서도 담배를 피웠던 날들.

“아니, 아이들 보는데 여기서 피면 어떡해?”
“어차피 애들도 다 알아. 크면 다 피워. 자기 인생이지.”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무뎌졌고,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엄마의 성향과 모습을 닮은 딸2
성향 때문일까?

환경 때문일까?

나는 지금, 통제가 아닌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깨우치게 하기 위해 대화를 하고, 아빠의 어린시절 경험을 이야기 해주고,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

2가 잘 헤쳐 나가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놀랍게도, 이젠 조금은 익숙해진 내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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