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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형님 Jun 13. 2024

매운맛에 대한 고찰

서울시 종로구 서린 낙지

20대 초중반까지 매운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운 음식을 아예 못 먹는 편은 아니지만 (틈새라면을 겨우 먹는 수준이긴 하다.) 찾아서 먹는 편은 아니었고, 스코빌 지수나 불닭 챌린지를 위시로 한 매운맛의 극단을 경험하고자 하는 트렌드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가학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곧 종종 매운맛을 찾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매운 음식은 정말 많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틈새라면과 같은 매운 라면부터 이것저것 사리를 때려 넣은 매운 갈비찜 (매운 양념을 잔뜩 머금은 당면이 제일이다.), 알싸한 양념의 찜닭, 꼭 치즈를 넣어야 하는 엽기떡볶이까지, 

한국은 매운 음식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아닐까.


심지어 한국을 넘어 외국의 매운맛을 쉽게 경험할 수도 있기도 하다.

입안이 얼얼해지는 마라탕부터 쥐똥고추를 몇 개 넣으면 짧고 굵게 매워지는 쌀국수까지,

한국의 매운맛과 외국의 매운맛이 어떻게 다른 지도 생각해 보면서 먹으면 그것도 큰 재미이다. 


아무쪼록 아직 가학적인 매운맛, 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닭 열풍에 동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확실히 매운맛과 스트레스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어쩌면 대체적으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한국 사람이 매운 음식을 찾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일에 치이고 모처럼 친한 친구와 저녁약속을 잡은 주말, 

화가 많았던지 멋대로 메뉴를 매운 낙지로 골랐다. 


행선지는 백종원의 삼대천왕으로 잘 알려진 서린낙지. 피맛골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매운 낙지볶음으로 정평이 나있는 맛집이라고 해서 오랫동안 흠모해 온 곳.  

7시 즈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긴 줄이 있었다. 다만 회전율이 꽤 빨랐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게 싫다면 가볍게 저녁을 때우고 8시쯤에 2차로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기도 하다. 식당이 9시 반에 닫아서 마음이 조급해지겠지만


주문은 입구 앞에서 받으시는데,  2명이서 낙지볶음 (24000원)과 베이컨소시지구이 (18000원)을 주문했다. 사람이 더 많았으면 계란말이를 추가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매장 안은 굉장히 분주한데, 이런 상황에 도가 트셨는지 직원분들은 하나하나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이신다. 척척 주문한 음식들이 나온다. 


매운 낙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 그대로 매운 양념에 볶아진 낙지가 나온다.  

적당히 익혀져서 한 조각조각이 탱글하고 육즙이 가득 차있다.

앞서 얘기하는 것을 까먹었지만, 매운 양념에 제일 어울리는 식재료 중 하나는 오징어, 낙지, 주꾸미와 같은 두족류가 아닐까 싶다. 쫄깃한 식감 때문에 한 번에 넘기지 못하고 여러 번 씹어야 하기 때문에 매운 양념을 입에 오래 머금고 있어야 하며, 씹을 때마다 육즙이 새어 나와서 매운 양념에 풍미를 더한다. 매운맛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흰밥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 콩나물 무침과 함께 아삭한 식감을 더한다.

낙지볶음을 이리저리 즐기면서 화를 가라앉히다 보면 함께 나온 베이컨 소시지 구이가 어느 정도 조리되어 있을 텐데, 가운데에 낙지볶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낙지볶음을 부어서 이리저리 뒤적여준다.

베이컨소시지구이에는 정직한 낙지볶음과 다르게 베이컨과 소지지 외에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 있다. 수북이 쌓인 콩나물과 양파, 파, 김치 아래에 베이컨과 소시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둘을 섞으면 재미있는 별미가 탄생한다. 낙지의 쫄깃한 식감 외에 다양한 재료들의 식감을 즐길 수 있으며, 매운 소스가 소시지와 베이컨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매운맛은 어느 정도 중화가 되었지만 낙지볶음을 먼저 즐기면서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손을 봐주었으니, 소기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쪼록 균형 잡힌 맛과 식감을 가진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셀프바에 가면 참기름과 큰 대접을 가져올 수 있는데, 공깃밥과 비벼먹으면 된다. 미리 알았다면 공깃밥을 나눠서 낙지볶음만 비벼서 먹어보고, 남은 반 공기로 베이컨소시지낙지볶음과 비벼 먹었을 텐데, 이미 낙지볶음과 베이컨소시지구이를 섞은 후여서 그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두둑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친구와 함께 광화문 광장-열린 송헌 녹지 광장-청계천-광화문역으로 돌아오는 동선을 거닐었다. 

여름으로 들어서기 직전인 5월 말 날씨도 너무 좋고, 동선이 훌륭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아무쪼록 서린 낙지에서 매운 음식을 먹으며 든 생각은,

매운맛은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제격이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맛은 아닌 것 같다. 

-인 기분을 0으로 만들어주는 데는 너무 훌륭한 선택이지만, 0인 기분을 +로 만들어주는 데는 영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다. 0인 기분을 +로 만들어주는 데는 단맛이나 감칠맛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실컷 매운맛의 효과를 톡톡히 누려놓고 이런 이야기하는 게 웃기지만, 혀가 얼얼하고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 행복감을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좋다면, 매운맛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일석이조이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기왕이면 매운 음식은 특히 혼자보단 함께 즐기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저런 화가 쌓이다 보면 서린 낙지에 방문해서 한참 줄을 선 다음에 낙지와 베이컨 소시지 구이, 그리고 계란말이를 함께 즐기고 동일한 동선을 걸으며 소화를 시킬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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