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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날의숲 Jul 28. 2020

내가 어른이 됐다고 생각된 순간

1차 갱년기 아빠와 사춘기 아들 Round #1


이 이야기는 약 일주일 동안 벌어진 중2가 된 아들의 첫 시험 보고 난 후의 일이다.

금요일 중학생 된 아들이 처음으로 시험다운 시험을
보고 평균과 본인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보여줬다.
아니 가족이 선생님께 온 문자를 받아보고 아들의 가방을
열어 성적표를 확인했다(여기서 가족의 실수 인정)

점수는 찬란했다! 어떡하지? 어떻게 얘기하지? 유튜브에서는 다그치지 말라고 한다. 껴안아주란다. 고생한다고.
난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의 방향과 판단의 근거들을 찾고 따라 했다.

그동안 한 번도 자녀의 교육에 관한 책을 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의 자기 계발도 부족하고 나도 너무 부족한데 그런데까지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지금 보니 난 굉장히 이기적이다.
그리고 멋지게만 보이고 싶은 아빠다. 마음 같아서는 차근차근 따지고 들고 싶었는데, 그럴 능력도 여유도 없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통섭형 인재, ebs 아이의 사생활, 여덟 단어의 자존감이 있는 아이 등등 본 것들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하나도 써먹을 데가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시험지를 보여달라고 아들을 졸랐다. 수요일이다. 영어 시험지를 보여줬다. 아! 어렵다! 쉽지 않다. 수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긴 지금은 포기상태다. 얼마 전 입학한 대학원에서 토익 점수를 졸업 전까지 내야 된단다.
이 순간 이런 것들이 떠올랐다! 난 이기적이다.
분명히!

유튜브에 신해철 육성으로 이런 게 있었다. 어렸을 적 신해철 부모님은 항상 그러셨다고 "엄마는 네가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면서 "복선으로 그래도 공부는 좀 해야지?" 이런 게 깔려 있었지만, 큰 부담 없이 공부했다 뭐 그런 얘기였다

따라 해보려고 했다.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들에게 너 요즘에 멍하지? 시험 끝나니까 목표 같은 게 없어서 그런가? 그래도 정신 차리고 다녀! 그런 눈빛으로 돌아다니다 사고 난다!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참 나도 한심하다. 가족은 사교육을 준비 중이다. 그러다 또 하루가 지나고 우리는 역습당했다.

아들이 친구랑 둘이서 영어 개인학습 관련 상담을 받고 왔단다.
아! 정말이었구나!(자기 의지로 찾아간 것이니 보낼 것임)

며칠 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중국집에서 짜장, 탕수육, 양장피, 공부가주를 먹고 있던 중 (술 이름도 재수 없게 공부...) 성적 얘기가 잠깐 나왔고, 영어 과외 얘기가 나오길래 나도 모르게 넌 전과목 과외받아야겠던데...라고 말해버렸고, 가족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아들 머리와 어깨가 짜장 그릇에 닿을 정도로 푹 숙여졌지만 그때는 꼴 보기 싫었다.
한참을 그러다 한마디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은 꿎꿎히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한 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지난 지금 영어 과외를 받겠다고 혼자 다녀온 것이다.  안쓰럽고, 미안하고, 기분이 묘했다.

내가 못했던 걸 속으로 또 입으로 강요하고 있는 나쁜 아빠인 거다. 아무 말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건데...

어제는 친구랑 그런 얘기를 했다
나도 힘들고, 뭣도 신경 쓰이는데 이제 아들 성적까지 신경 쓰이는 정말 아빠가 돼버린 것 같다고,

같이 여행 가고 장난치고 놀던 시절은 지금의 무슨 모습에 보탬이 돠었을까? 물론 뭔가 있겠지만. 이 또한 나 놀자고 한일들인 것 같다.

키는 나보다 커버렸지만, 말투와 행동은 아직도 아이인 것을 난 외형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같이 숨 쉬는 사람들마저도 깊숙이 들여보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완벽한 공부법이란 책을 꺼내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들은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법을 모르나 보다!

할 수 있는 아이에게 짜증만 일주일 동안 묵언으로 눈치로 입으로 냈나 보다

나도 결국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무관심한 척한 것이다, 결국 좋은 대학 갈ᄅ면이라는 문장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안해 도영아! 넌 뭐든 잘할 수 있어!
어제 난 내가 읽다 포기한 책을 슬그머니 아들 책상에 올려놨다. "이렇게 공부해도 안되면 포기해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책을 보고 인상을 쓰는 것 같더니 날 보고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일 것 없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좀 있다가 이렇게 물어본다? 책갈피 같은 게 있는데 이걸 꼭 끼고 있어야 해? 어! 아빠는 있는 게 좋더라!
속으로 얘기했다! 그만 좀 물어보고!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뭐 해도 되냐고 자주 물어본다. 난 이게 피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그 반대인 건가 헷갈린다! 조만간 질문도 사라지면 대화는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분명 
난 1차 갱년기다!
아들은 사춘기다!( 우리 아들이 싫어하는 말 중2병, 사춘기)
내가 어른이 되는 건지? 아들이 어른이 되가는 건지? 헷갈린다 하지만, 이 둘은 앞으로도 물심양면으로 다툴게 뻔하다.


그래도

아들! 사랑한다!

그리고 여보! 갤럭시 버즈 사주자!
영어 들어야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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