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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Feb 08. 2022

<프렌치 디스패치> 2D와 3D를 오가는 활동사진

만화경으로 영화보기


20세기 초반, 어느 프랑스 도시의 미국 잡지인 '프렌치 디스패치'의 사옥.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시절 어렴풋이 떠올려본 동화책은 이랬다.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대부분 직설적이고 직관적이었다. 착한 사람은 착한 말과 행동을 했고, 나쁜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하거나 알아채기 쉬운 거짓말만 했다. 또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배경, 삽화의 색깔 등은 어떤 어린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표현되었던 것 같다.  

[예술과 예술가] 섹션에 소개되는 미치광이 화가 '로젠탈러'(베네치오 델 토로)와 그의 뮤즈인 교도관 '시몬'(레아 세이두).

이 영화 역시 그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이'가 '어른'으로 바뀐 정도다. 보여주고 싶은 중요한 것들을 콕콕 집어서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의 일환으로 장면 속 인물들은 인위적으로 멈춰 '스톱모션'을 연출하는 등 연극적인 재미를 주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종종 컷 전환이 아닌 연극의 무대전환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지점이었다. 배경과 소품, 등장인물들은 정확히 의도된 동선에 따라 의도된 구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이 과정은 너무나 웨스 앤더슨 스러워서 만족스러웠다. 


분명히 영화였는데 사진이나 그림이 되었다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부터 이러한 설정에 스며들어서 그런지, 아무리 선을 세게 넘나드는 장면도 이질감 없이 즐거운 리듬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장면의 미장센은 구체적으로 의도되었고, 그래서 주의깊게 봐야했다. 자막 때문에 영화를 놓칠까 봐 더빙판에 대한 갈망이 샘솟았다. 감독이 의도한 장면을 온전히 감상하는 데 있어, 자막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정치/시] 섹션에 소개되는 학생운동가 '제피렐리'(티모시 살라메)와 여사친(?) '줄리엣'(리나 쿠드리).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체성

영화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종간호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편집장인 아서가 죽었고, 유언장에는 자신이 사망할 시 잡지를 폐간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영화는 섹션에 따라 기사, 기자, 편집장 아서의 이야기를 회상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렌치 디스패치'의 '목차'에 따라 영화가 진행된다. 2차원 매체인 잡지를 3차원 매체인 영상으로 감상하는 경험이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인 '아서 하위츠 주니어'(빌 머레이).


사실 '프렌치 디스패치'의 존재는 편집장 아서의 정체성과 같다. 그래서 해당 섹션의 기사가 쓰인 배경, 아서와 기자들의 대화 등은 허투루 흘릴 수 없다. 스쳐 지나가는 아서의 말과 행동이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서의 집무실 문 위에는 '눈물 금지'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다양한 단서들이 아서의 생각과 삶을 미루어보게 한다. 시종일관 책상에 걸터앉아 발을 흐느적대는 직원, 푸드 칼럼을 써오랬더니 인터뷰 날 겪은 납치사건을 써온 기자, 엄청난 개인 비용을 업무 비용으로 청구한 기자 등,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상황에도 아서는 큰 동요나 질타를 하지 않는다. 그저 군소리나 잠깐 하고 말 뿐이다. 이러한 사소한 모습들 속에서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보인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개성 넘치는 기자들


아서와 앤더슨의 '정리'

아서는 외형적으로 딱딱하고 보수적인 노인 같다. 하지만 '종간호'를 쭉 둘러보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어쩌면 그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한 좋은 편집장이 아니었을까. 종간호에 실리게 될 각 섹션의 이야기들은 그가 편집장이 아니었다면 쉽게 쓰이지 못했을 기사들이다. 종간호인 만큼 가장 그들 다운 기사들로 '프렌치 디스패치'가 채워졌을 것이고, 아서의 삶을 '종간호'라는 상징물에 압축하려 했을 것이다. 


영화 밖으로 나와보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감독의 자선전 중 한 섹션 같다. 감독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표현들을, 이 영화에 담아 잘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잡지사'라는 소재와 '목차'라는 구성은 매우 적절했다.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최소한의 제약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콘셉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장면에 한땀, 한땀 디테일한 구도를 설정한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 속에는 작품사진이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게다가 등장인물/배경/소품을 이동시키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장면의 아름다움은 극대화된다. 마치 '웨스 앤더슨'이라는 전자제품의 최신 버전인 '웨스 앤더슨 3.0'을 만나는 듯한 혁신적인 감동이 느껴진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편집장 아서의 죽음과 함께 종간되었다. 동시에 웨스 앤더슨 감독의 표현세계 일부도 함게 정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영화 속에는 그의 표현 욕구가 모자람 없이 담겨져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다음 작품을 보고나서야 오히려 '프렌치 디스패치'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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