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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Feb 02. 2023

진짜 어른되기

어른답게 이해하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연습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사소하더라도 매년 새해 목표 하나씩을 세웠고, 그리고 빠짐없이 지켜왔다. 동호회 활동하기, 인턴으로 이력 만들기, 대기업 취업하기, 자격증 따기, 이직하기, 대학원 가기, 결혼 준비하기 등등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여도 나에게는 그 당시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들이었다. 다만 어느 해부터인지 자연스레 목표가 사라졌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여유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것이리라.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다시 목표 세우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올해 목표는 진짜 어른 되기.



그동안 아내에게 느껴왔던 서운함과 안 좋은 감정들을 한 번에 털어내기는 힘들겠지만 하나씩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털어내 보기 시작했다.


"연애 시절 사진 보기"

그동안 관심 없던 기능이지만 핸드폰 사진 앨범에는 마치 좋아요 하트모양의 즐겨찾기 버튼이 있다. (앨범 자체를 따로 만들기는 귀찮다.) 연애 때 즐거워하던 사진, 지금은 상상하기 부끄럽지만 둘이 뽀뽀하는 사진, 자주 가던 카페, 여행 사진 같은 추억팔이 할만한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봤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간간이 상처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기도 하더라. 내가 변해서 아내도 변하며 서로 불만을 쌓아두었을까. 그저 육아라는 삶 적응에 필요한 1, 2년의 힘든 기간을 버티고자 잠시 부린 아내의 투정에 내가 크게 엇나가버렸던 것일까. 어떤 이유이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온 첫 순간을 돌이켜보기"

아내의 임신 기간 중에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들이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온 그 순간 어느 정도 잊혔었다. 그 조그마한 생명체가 주는 신비로움과 감격, 그리고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한 며칠 동안 느꼈던 엄마의 위대함, 잉태를 위한 유전자 외엔 하나 필요 없었던 남편과 아빠라는 존재.(육아를 하면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느꼈었다.)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미안함과 오묘한 감정들을 떠올려보자니, 그동안 아내가 내게 쏟아낸 날카로운 말들은 그저 "나 힘들어"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아내의 순간 감정적인 말을 내가 그대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온 것이었을까. 어떤 이유이든 내 잘못도 있다.


"남들보다 예민한 나를 인정하기"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결벽증까진 아니지만 청소에 진심이시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고 그런 가정에서 보고 자라왔으니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보았다. 거실 바닥에 날리는 머리카락은 그저 남들보다 예민한 내 눈에 특히 거슬리는 이물질일 뿐, 내가 치우면 된다.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집안일에 있어 그저 내가 예민한 것을 내 기준에 아내를 맞추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저 난 예민한 남자고, 아내는 나보다 덜 예민한 여자다. 원인이 유전자일지, 성장환경일지, 성향일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이유이든 우린 그냥 다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남을 때에는 아내가 되어보기"

언제부터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근데' 이런 말들이 자주 떠오르는 듯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상사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들 중 하나가 "응, 네 말이 뭔지 알겠는데."였다. 하, 내가 그런 상사 같은 남편이었다. '네 말이 뭔지 알겠는데 내 말은 이래.'와 '내 말은 이거인데, 네 말은 뭐야'의 차이가 나만 느껴지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내 생각이 맞고 내 감정만 중요하면 안 되는 것인데, 그동안 홀로 삼켜왔던 불만들이 다 그런 부류의 원인이었던 듯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관여하지 않고 아내가 온전히 홀로 감당한 것들도 많았다. 육아휴직 중에는 내가 출근해 있는 거의 10시간 동안의 독박 육아를, (독박육아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신생아 때는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에 맞추어 입는 것, 먹는 것을 포함한 의식주와 예방접종 같은 정말 많은 것들을 고민해야 했었을 것이다.) 복직 후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주위에서 흔히 요구하는 엄마라는 역할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들. 생각해 보면 난 전혀 고려해보지 않은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힘들 때가 있다면 아내도 힘들 때가 있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과거에서 거슬러보자니, 왜인지 마음이 후련하다. 내가 힘든 만큼 너도 힘들어봐라 했던 내 나쁜 마음에 대한 답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힘든 만큼 너도 힘들었구나 하는 공감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한결 시원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글을 쓰다보니 '그저‘라는 말이 참 좋은 표현인 듯하다. 나와 같은 남편들아, 우리 ‘그저’ 태연해져 보자. 작년까진 모두 잊고 올해부턴 우리도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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