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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Mar 10. 2022

적당히 뛰어나고 적당히 평범하게

["평범"한 자기소개③]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30대 이야기

다행히도 29살 백수의 신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략 3개월 정도. 별거 아닌 시간이고 여행도 다니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기일 수도 있었지만, 일자리가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퇴직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채용공고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 난 어찌 되었든 하루빨리 적당히 뛰어난 월급쟁이가 되고 싶었다.



"사(私) 노비"에서 "공(公) 노비"로

사기업에서의 고배를 마신 나는 '()' 자가 들어간 곳으로 취업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짧으면 짧은 기간이지만 백수로 지낸 3개월은 자존감이 바닥에 있었던 시기다. 아무것도 아닌 겨우  톨의 먼지가  기분. 공기업, 공공기관, 대학 교직원 등등 누가 봐도 공적인 냄새가 나는 곳들은  지원했다. 그러다 어느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얻어걸렸다. 솔직히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으나 알고 보니 나름 메이저로 인정받는 곳이더라. "역시나  잘난 놈이었던가."라고 하기엔 전혀 순탄치 않았다. 최종 2 채용에서 1등짜리가 입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추가합격으로 구제되었으니. 사기업에서의 기간인생 최악의 시기였다면  때는  지금까지의 인생 , 중기의 운을 영혼까지 끌어다  순간이다.


다시 한번 시작된, 하지만 매우 다른 신입의 시기

새로운 직장에서의 다시 시작하는 첫 출근은 역시 두렵다. 그곳에서의 선배들의 첫 질문. "OO기업 다녔었다며? 왜 왔어, 연봉도 줄었을 텐데." 당황했다. 난 오히려 연봉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는데. 그뿐이던가. 업무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랐다. 부장에게 목숨을 내놓고 보고하던 그 시절이 불과 3개월 전이었지만 몇 년이 지나 시대가 바뀐 기분이었다. 도대체 혼나는 게 뭔지, 동료로서의 존중과 새로운 일꾼이 왔다는 환영(소위 빨대 꽂을 수 있는 신입)이 느껴져서 너무나 설렜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이 전보단 훨씬 적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시간이 아침 8시 그리고 저녁 7시였다. 저녁 있는 삶이라니. 철밥통으로 이런 호시절로 평생을 지낼 수 있다니.


문득 그리워지는 예전, 왠지 모르게 뒤쳐지는 나의 모습

사람이 간사한 동물이라는 것이 맞다. 호시절을 지내다 보니 예전 직장동료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저 그런 티 나지 않는 업무를 해내며 조용하고 무난한 생활에 미소 짓고 있기엔 내 또래 친구들은 멋들어진 정장에, 진급에, 팀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세련돼 보이더라. 난 청바지에 티셔츠 살짝 걸쳐 입고 어슬렁거리는 지방 촌놈이 되어가는데. 무언가 해야겠다고 다짐하기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직장을 다시 구할 순 없으니 자기 계발이라도 해야지." 하고 결정한 것이 대학원 진학. 이직할 때 쓴 내 운이 영혼까지 털어 쓴 것은 아니었는지, 대단한 곳의 공학석사가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완벽하진 않았다.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 석사였다(영어로 말하기 좋게 표현하면 파트타임이지만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야간대학원이다). 난 최고는 아니지만 평범은 넘어서고 싶은 사람이니 꾸역꾸역 야간이라도 해야 했다.


아직 남은 내 30대의 모습, "미정"

공학석사 학위기를 받는 그 순간은 학사 졸업식 때보다 감격스러웠다. 부모님도 학사 때 보다 좋아하신 건 내 느낌인가. 아주 작은 중소기업 정규직 출입증 보다 대기업 계약직 출입증이 더 빛이 나는 것처럼(출입증에는 주로 직종이 표시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난 진급까지 했으니 현재 선임급 직원에 공학석사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예쁜 아내와 결혼도 했다. 이제 돌이 갓 지난 400일 정도 되는 예쁜 딸아이도 생겼다. 이 정도면 적당히 평범한 삶인가. 난 아직까진 적당히 뛰어나고 적당히 평범하다.



사기업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신입사원 시절 옆자리 대리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기억하며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철밥통의 생활은 잠시의 짧은 평온함을 선사하였으나 무언가 공허한 무기력감을 가져왔다. 대학원 과정으로 2년을 버텼으나, 지난 1년은 다시 공허한 평온함과 지루함이 다가온 시기다. 일과 가정에 완전히 녹아든 나와 같은 30대들아. 우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만족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봤을 "직장인 자격증", "직장인 취미". 이런 키워드들이 답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도 난 평범하지만 남들보단 뛰어난 답을 찾고 싶어 고민 중이다. 30대 중반의 평범한 11년 차 직장인이자 2년 차 육아대디. 난 여전히 남들처럼 적당히 "평범"하지만 남들보다 적당히 "뛰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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