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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Apr 23. 2022

나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자유가 선사해준 외롭고 공허한 시간


바로 전주 주말, 와이프를 친정으로 내쫓았다. 아기는 내 품에 안은 채. 안 그래도 가까운 친정이지만(걸어서 10분 거리다.) 아기 없이 혼자 떠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설레었을까. 와이프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자유시간이었을 주말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와이프가 집에 돌아와 말해주었다.


"이번 주 혼자 고생했으니까 다음 주에는 너 혼자 놀다 혼자 자. 휴가 줄게."


해냈다. 친정으로 내쫓은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애초에 기브 앤 테이브의 큰 그림을 그려보긴 했지만 이렇게 순순히 내 시간이 생길 줄은 몰랐다. 투철한 희생으로 쟁취한 이번 주말의 자유시간. 아이를 갖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자유시간으로 여길 수 있는 날이 한 손에 꼽힌다.(오늘로 6번째. 두 손으로 꼽기 시작했다.) 꿈만 같더라.


육아로부터, 와이프로부터 해방된 그 단 하루의 자유시간이 확정되었을 때 머릿속이 바빠졌다. 어떻게 해야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즐겼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코로나19 극예민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부를 순 없었다. 일단 늦잠은 자야 하고, 그동안 이런저런 눈치 보느라 잘 못 해 드렸던 부모님을 뵙고(사실 본가도 걸어서 10분 거리다.), 혼자 맥주 한 캔 들고 영화 한 편 보다 잠들면 되려나 싶었다. 그리고 주말인 오늘, 딱 그대로. 생각한 대로 그렇게 했다.


다만, 난 오늘 자유였지만 외톨이였다. 계획대로 했고, 만족했고, 즐거운 것 같았지만 공허했다. 그동안 못 만났던, 혹은 연락에 소홀했던 친구나 선배들에 연락하고자 했지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를 정독했다. 가나다 순으로 표시되는 600명이 넘는 연락처의 주인들 중 내가 갑자기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들과 함께 지냈던 그 시절에는 분명 시도 때도 없이 연락했던 그들이었는데. 선뜻 연락할 자신이 없더라. 그리고 동시에, 언제인가 진동으로 징징대던 핸드폰을 태연하게 뒤집으며 전화를 무시하던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쉬고, 자고, 놀고 등 여러 가지에 모두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진 듯하다. 육아에 지치고, 여유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관계들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혼자이길 자처하게 된 건가 싶다. 주위에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하거나 육아를 시작하는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너 바쁘다고 사람 신경 안 쓰면 안 된다고. 다만, 그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주제넘은 조언을 들어줄 나의 "아는 사람"이 여전히 있어야 말이다. 만약에 없다면, 누군가가 나의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진 않을까. 이기적이지만 아직은 혹은 여전히 나도 "아는 사람"이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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