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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새 Oct 03. 2022

탈성장 석사과정에 지원하다

https://master.degrowth.org/online-masters/

한국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다닌 지 5년 째, 박사논문 주제까지 정해놓고서 다시 석사를 들어갔다.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답답함이 해소가 잘 안 되었는데, 입학 1년 지난 시점부터 다른 전공으로 석사를 다시 들어갈까를 고민할 정도였다.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길들을 찾아다닌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다른 길들이 다 맘에 안들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있던 와중에 찾은 게 탈성장 석사과정이었다. 

한국에서도 2020년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면 느낄 수록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을 크게 느껴서, 마침 탈성장에도 관심을 가지던 차였다. 보건학 전공자로서 건강과 보건의료와 관련된 제도/정책이나 관련 행위주체들의 실천도 뭔가 다른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를 내내 고민하던 차에, 탈성장사회에 대한 고민과 건강에 대한 고민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건학 박사과정을 다니면서도 늘 보건학 외 다른 학문분야의 내용들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했었기에, 탈성장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생각의 방향이 전환되고, 연구의 방향이 확장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탈성장 관점을 가지고 연구하는 세계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지원을 했다. 온라인 과정이라 몸이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한 몫 했다.


탈성장 석사과정은 탈성장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Research & Degrowth와 Institute of 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ICTA)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과정이다. 2021년에 처음 생겨서 올해 2년차 지원자를 모집했다. 주변에 탈성장에 관련 이야기를 평소에 나누던 사람들에게 공유했더니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2시간 반*5회*3모듈 수업이 6ects(학점)이고, 2시간 반*5회*6모듈 수업이 12ects(학점)이다. 총 6개 수업이 있고, 논문이 12ects라서 총 60ects를 이수해야 한다. 한국으로 치면 3학점 수업이 4개, 6학점 수업이 2개, 논문연구수업이 2개인 거랑 비슷해서 한국 정규 석사과정이랑 학점이나 수업 시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간표는 정말 독특하게 생겼는데, 한국이 3월-6월이 1학기, 9월-12월이 2학기이고, 이 과정이 물리적으로 위치해 있는 스페인의 정규 대학 학기가 9월-12월이 1학기, 3월-6월이 2학기인 것과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무려 11월-7월을 연속으로 한다.


https://master.degrowth.org/application-2/

석사과정이라서 그런지, 생긴 지 얼마 안 된 과정이라 그런지, 전통적인 학문 분과의 과정과는 다른 식으로 구성된 과정이라 그런지, 서류도 간편하고 추천서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력서에 추천인 연락처를 적어 내라고 하는 것도 자격이 대학 교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서, 평소 탈성장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석사과정이기는 한 지라, 대학졸업증명서와 학사과정 성적표를 요구했는데, 난생 처음으로 아포스티유 인증을 해 봤다. 학부를 졸업한 대학에서는 영문으로 된 서류에 압인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이게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만져봐야 알아차릴 수 있다 보니 나도 처음엔 그게 압인이 있는 줄 몰랐고 공증을 받으려고 공증사무소에 들고 가도 압인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직인을 요구해서, 대학에 다시 문의를 하고서야 압인인 것을 알고 공증사무소에 들고 가서도 압인이라고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공증을 받을 수 있었다. 서류를 떼서 공증을 받고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는 과정이 조금 번거로운 걸 제외하고는 이력서와 지원동기서를 제출하는 게 끝이라서 지원 과정은 간편했다. 


지원서는 8월 초에 제출했고, 9월 1일의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매우 설렜다. 탈성장과 건강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탈성장 관점에서 건강에 대한 논의를 몇 개 보기는 했지만, 사실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훨씬 많다고 느꼈다. 기존의 건강과 보건의료 관련 제도적 배열들은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어가면 성장주의에 기반해서 발달해왔고, 그렇게 운영되어 왔다. 끊임없이 건강해져야 한다는 지향점 자체도 생물이 늘 건강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성장주의적 관점일 수 있다. 따라서, 생태적 한계를 마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건강과 관련된 개념과 실천과 모든 것들을 재검토해봐야 한다. 지금의 사상의 최전선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논의들이고, 또 생태적 한계를 고려한다면 비인간 생물과 비인간 물질들과의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건강과 비인간생물의 건강과 비인간 물질의 건강과 이 상호작용들은 어떻게 되는건지, 생태적 한계 안에서 건강과 관련된 실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관련 이해당사자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등등 고민해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다. 아직은 공동체돌봄과 커먼즈 정도의 키워드만 갖고 있지만 좀더 연구의 방향을 확장시켜보는 시간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발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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