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들
성경의 전도서는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 (개역개정, 전도서 1장 9절)’고 했다. 창작에 대한 격언이다. 작가는 타인의 글에 영향을 받는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쓰는 그림일기는 아무 영향받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곁에서 도와주는 부모, 형제, 선생님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쓰라고 돕는다. 어린 시절 읽은 책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화가이면서 수필을 남긴 고갱도 칼라일, 보들레르 같은 상징주의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 글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 인용은 영향을 표시한다.
인용을 자신의 말로 다시 설명해주는 편이 좋다. 자신의 글에 인용만 넣어서 시작하거나 끝내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이나 엔딩 크레딧처럼 말이다. 멋진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렇게 써도 될까? 글쓰기에 답은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한 인용이라면 인용만 넣기에 부족하다. 인용은 나의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판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낼 생각이라면, 인용을 자신의 말로 바꿔 설명을 해주는 편이 좋다. 인용은 엄밀히 말해 다른 사람의 글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의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글로 남는다. 설명은 작가가 자신의 글에 갖는 책임이다. 비록 작가 자신은 인용이 마음에 들고, 또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에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독자는 그렇지 않다. 독자는 작가가 인용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지식 없이 인용을 마주한다. 친절한 작가라면, 다른 사람의 글을 왜 인용했는지,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인용했는지 적을 것이다. 직접 설명을 한 후에야 비로소 인용은 자신의 글 안으로 들어온다.
간혹 인용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인용이 지나치게 많다면, 쓰고 있는 글이 자신의 글인지, 남의 글인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적는데, 인용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독자들은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어 글을 읽지, 인용 때문에 글을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인용을 많이 하게 될까? 하나는 불안 때문에 전문가에게 기대고 싶은 심리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분명 좋은 글이 나온다. 자신감 있게 글을 쓰자.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강제로 인용을 줄이는 편이 났다. 수많은 책을 인용할수록 글이 지저분해진다. 독자는 인용 사이에서 작가의 말을 찾느라 헤맨다. 자랑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꼭 필요한 곳에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용도로 인용하는 편이 좋다.
인용을 어디에서 했는지 명확하게 표기한다. 인용에도 저작권이 있다. 법률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조금은 강한 어조로 적는다. 간혹 남의 글을 자신의 글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명백한 표절이다.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는 생각보다 작다. 소문도 금방 돈다. 아내 학교에 한국인 한 명이 표절로 인해 퇴학처리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내의 전공이 피아노인 것을 생각한다면, 글을 주로 쓰는 인문, 창작 계열의 전공은 얼마나 엄격할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성의 없이 베낀 것도 문제고 저작권도 문제다.
저작권을 어느 기관에 반드시 등록해야만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은 발행 즉시 작가에게 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을 할 경우, 반드시 표기해 저작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야 한다.
어떻게 인용 표기를 해야 할까? 표기에 작가와 창작물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만약 번역물이라면 저작권은 원작자에게도 있지만 번역가에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를 병기한다. 또 출판-배포권은 출판사나 배급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께 표기한다. 클래식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 보호기간(작가 사후 70년)이 끝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 출판사가 각기 다른 번역서를 낸다. 출판사를 적지 않으면 어느 출판사의 책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내용의 정확한 추적을 위해 몇 년도에 출판된 책의 몇 쪽인지 적는다. 마음 연결 출판은 시카고 매뉴얼 스타일을 변형해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저자, 책이름, 번역가 (출판사: 출판 연도) 쪽 번호
그리고 이왕이면 인용한 글의 저작권이 살아 있다면 해당 출판사나 작가에게 알리는 편이 속 편하다. 대부분 괜찮다고 친절하게 말해주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
인용에는 함정이 있다. 인용은 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말로 설명해야 한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지나친 인용을 지양하는 편이 좋다. 인용을 명확히 표기하지 않으면 표절 시비에 걸릴 수 있다. 인용은 생각보다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