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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3. 2023

파란, 기억여행자 9

9. 모자가 살랑거렸다.

독수리는 깨어나자마자, 캑캑거렸다. 독수리가 힘들여서 뱉어낸 것은 부엉이의 모자였다.       


여우는 모자를 물어, 강으로 가져가 씻었다. 잔잔히 흐르는 물에 모자가 살랑거렸다. 물에 깨끗하게 씻긴 모자를 강가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바람결에 모자가 흔들거렸다. 부엉이는 멀리 높은 나무에 앉아서 자신의 모자를 바라보았다.     

               

독수리는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 때가 왔소. 여기서 피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그냥 이대로 머문다는 뜻이 아니라, 저 허 공간에 자기를 버리고 마는 것이오.                    


독수리와 부엉이는 나무 아래의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멀리 작은 점들이 다시 나타났다.                    


독수리는 눈을 부릅뜨며, 큰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저들이 또 나타났군. 빨리 서두르시오.                    


부엉이도 뭔가 다짐한 듯 날아가 모자를 낚아채고, 여우와 나를 불렀다.                     


빨리 우리를 따라오세요.                    


제가 어떻게 독수리와 부엉이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황해 하자, 독수리가 다가와 나를 살짝 물었다.                     

독수리가 날자 날개 퍼덕이는 엄청난 소리와 세차게 날아가는 속도 때문에 눈은 뜰 수 없었고, 나의 털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가 나타났고, 장례식장이 보였다. 우리는 장례식장 옆 큰 나무 안쪽에 모여 있고, 부엉이는 바깥쪽 나뭇가지로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례식 절차가 끝나 보였다. 가족들은 상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침통한 얼굴의 한 청년이 양 쪽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었다.                      


부엉이는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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