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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y 25. 2024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얼마 전 밤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어렸을 때에는 시골에 비가 내렸다 하면 형하고 바깥에 나가서 비 맞는 걸 즐겼다.

그때만 해도 비가 제법 깔끔했다는 기억이 있다.


한 번은 나무잎줄기를 타고 내리는 빗물에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머리를 감은적도 있다.

소나기였으니 가능한 물줄기였지 싶다.


언제부터인가 시골에 내리는 비나 도심지역에서 내리는 비나 우산을 써서라도 피하게 되었다.

그만큼 예전만큼 비도 깔끔하지 않게 되었다는 소리겠지.


비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있는데,


[2024년 5월: 비가 내리던 어느날 밤, 집에 가려고 나오다가...]



형 우산 좀 가져다 주렴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다.

언덕 위에 있던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려고 정문을 나오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쉽게 출발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미 일기예보를 확인한 엄마 아빠들이 우산하나씩 들고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의 부모님을 보이지 않았다.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


한참 동안 비를 맞고 집에 도착했더니 가방은 안팎으로 다 젖어 있었고

공책과 필구도구도 물로 흥건했다.

신발은 철퍽철퍽 소리가 날 정도로 물이 차있었고

속옷이 다 젖을 정도로 옷도 빗물에 빨래가 되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에 젖은 채로 집에 와보니

어머니께서는 안방에서 낮잠 중이셨고

집에 온 나를 보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형 학교에 우산 들고 다녀오렴. 비 맞으면 안 되잖니.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단 한 번을 우산을 가져다 주신 적이 없다.

뭐 자식이라고 부모가 무조건 학교 앞에서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의무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비를 홀딱 맞고 온 아들에게 어머니께서는,


형까지 맞게 하고 올 수는 없잖니. 다녀오렴.


비를 맞으며 집에 가는 게 익숙했던 둘째였다.



군대에서 내리는 비


백마부대를 나온 나.

당시에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인지 비만 내렸다 하면 온 중대가 비상에 걸렸다.

비가 온다는 건 막사 내부건 외부건 빗물이 넘쳐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밤이고 낮이고 할 거 없이 비만 내렸다 하면 중대 행정실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비로 인해 영내 둑이 무너졌으니 전 병력은 장비를 차고 내무실에 대기하기 바랍니다.


일과시간에 나오는 방송이었으면 완전 땡큐였다. 일과 대신에 시간을 때우면 되었으니.

다만, 새벽에 방송이 나온다 싶으면 온갖 짜증부터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막사 안으로 빗물 새는 것도 신경질 나는데

새벽에 야외 작업을 한다 해도 다음날 휴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군대를 기준으로 참 싫어진 날씨중에 하나가 비 오는 날이지 싶다.



전방 십자 인대 파열


제대하고 바로 복학하자마자 대학교 축구시합에 나갔었다.

워낙에 축구에 젬병이라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학과 특성상 남학생 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출전을 해야만 전 학년 통틀어서 딱 11명이 되었다.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순간이었다.

상대편으로부터 날아오는 공을 막고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을 뿐이다.

몸속 어딘가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운동장에서 자빠졌다.

무릎 아래와 몸이 180도 돌아간 상태로 넘어지면서 무릎이 바닥을 치는 순간

돌아가있던 무릎이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당시에 안 아픈 척했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집 근처 동네 병원을 가보니 인대가 끊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

이곳에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그렇게 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몇 개월을 지내다가

수술날짜가 잡히고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워낙에 활동적이었기에 금방 회복을 했지만

한번 다쳐보니깐 몸에서도 조심하려는지 오랫동안 즐겼던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의 아내는 믿지 않지만 그때의 튼실했던 몸은 없어지고 살만 찌는 체질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는,


운동선수 할거 아니면 스키는 타지 마세요~


겁을 주려고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평소 즐겨 타던 스키도 끊었다.


다리를 다치고 보니 비가 내릴 때마다 무릎이 쑤신다.

특히 강수량이 많은 날에는 더 쓰리다.

옛 어른들께서 무릎이 쑤시면 비가 오려나보다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가더라.




한때는 정말 좋아하던 비 내리는 날.

예전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조차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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