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퇴사 후 시련과 방황의 시절(2001년 4월 ~ 6월)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현재의 나의 모습도 있기도 하다. 그 시절 우울함에 도서관을 다니며 항상 관심이 많았던 동양 철학책들을 많이 봤던 듯하다. 그런데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생긴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SK빌플러스라는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거의 2개월 이상을 놀고 있는 입장인 나에게는 절박한 심정으로 면접으로 보러 갔던 듯하다. 그런데 처음 면접은 기술 면접이었는데 실무자들이 보는 면접이었다.
나중 합격해서 들으니 나보다 쟁쟁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 했다고 한다. 그때 면접 봤던 과장님이 10년 넘게 돌고 돌아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회사 동료로 있어서 듣게 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장 면접도 있었다. 그때 사장님은 나에게 여자 상사, 팀장님과 일해야 하는데 괜찮겠냐?라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 읽고 있던 논어의 술어 편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과 함께 3명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는데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면접을 봤다. 그리고는 합격했다. 이제 와서 보면 질문과 답이 맞지 않는 듯한데 그냥 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 선배들에게 듣기로는 이놈 사장님 낙하산 아니야라는 말도 돌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때 사장님이 행정고시 출신이어서 한자나 동양 고전을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되었다. 면접은 이렇게 자신만 잘한다고 해서 합격하는 것은 아님을 이 면접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3달을 기다려 입사한 회사가 출근한 지 1~2주 만에 다시 이 사업을 접기로 했단다. 그래서 SKT에서 오신 분들은 다시 SKT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SK그룹으로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단다. 나에게는 이때 외부 인중 유일하게 SKT에 입사할 생각이 있는지 SKT인사담당자에게 문의가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잠시 몸담았던 회사의 동료들을 배신하기 싫은 마음(그 시절 외부 유인 사람들에게 SKT는 사업 벌여서 불러놓고 무책임하게 사업을 접어버린 적으로 규정되고 있었다)과 기획업무보다는 좀 더 IT기술적인 일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 SK증권의 면접에 지원했다. SK증권에 들어가고 보니 신입사원 한 명을 덜 뽑고 나를 뽑았다는 사실을 듣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될지도 모를 가상의 한 명에게 미안함을 계속 간직하기에는 그 시절 나 또한 절박했다.
이 사건은 나에게 SK그룹에 대해 최소한의 애정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객기가 있어서 가끔 회사 윗사람들이 행하는 군대문화, 조직문화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SK그룹을 떠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벤처에서 사업을 접으면 알리바바에서처럼 그 사업에 있던 인원들에게 나가라고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1달 반 놀면서 다른 SK그룹의 그룹사에 계속 면접도 보게 하고 인력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기분을 가지게 되었고 회사일로 힘들 때마다 기억을 되돌아보며 견디는 힘이 되기도 했다. 나중 다른 에피소드에서 내가 생각하는 SK그룹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이야기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하련다.
빌플러스는 참 웃기는 회사였다. 알리바바가 나중 나에게 큰돈을 준 회사가 되었다면 이 회사에는 나에게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렇게 놀 수 있구나를 보여준 회사였다. 출근해서 1주일 만에 사업이 접히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출근하면 오늘 점심은 뭘 먹으러 갈까 가 주제였다. 그래서 남산 가서 돈가스도 먹고 명동까지 걸어가서 쇠그릇의 곰탕도 먹었던 거 같고 여하튼 생전 못 먹어본 노포 집들을 많이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머릿속에 남은 에피소드는 출근하자마자 사장님 포함 전 직원이 조조 영화를 보러 간 사건이다. 영화는 무엇을 봤는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회사를 다니며 이렇게 한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듯하다. 첫 직장에서 매일, 토요일까지 새벽 3시에나 퇴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회사생활이라니 정말 적응하기 힘들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