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초콜렛을 집었다.
누가 봐도 감탄할 만 스펙이다.
신랑의 스펙에서 말해주듯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두말할 것 없이 공부에서는 최고의 성적을 받았던 수재였다. 전교생의 성적이 그래프로 나오면 자신의 성적은 아이들이 많이 몰려있는 선을 훌쩍 넘어서 혼자서 저 높은 곳에 있었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가까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아버지께서 점심을 사주신다고 데리고 나가셨다. 내가 좋아하는 냉면도 사주시고 같이 카페에도 갔었다. 그때 아버님께서 살아오신 세월들을 들려주시면서 신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주변 분들에게 밥도 많이 사셨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과 큐브 빨리 맞추기 시합을 했는데 신랑이 이긴 것이 학교에서 굉장히 유명한 일이었다고 자주 회상하며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신랑은 자라면서 어머님과 아버님께 자랑스러운 일을 많이 만들어드렸기에, 두 분께서는 당신의 큰 아들은 살면서 할 효도를 학교 다닐 때 다 했다고 뿌듯해하며 늘 말씀하셨다. 그 효도 중에서도 가장 신나고 흥분하며 말씀해주셨던 것은, 신랑이 서울대학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입학 등록금을 준비해서 학교에 납부하러 가셨는데, 학교에서 수석입학이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좋으셨다고 하셨다. 정말 신랑은 살면서 할 효도를 미리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자녀를 키우면서 효도를 기대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키우며 너 웃으며 자란 모습으로 벌써 다 받았다.
- 김승호 회장의 ‘아들에게 주는 교훈’ 중에서 -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대학교는 정말 장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의 모양!
예전에 신랑에게 그게 무슨 뜻이 담긴 모양이냐고 질문했었다. 그때 신랑이 멋쩍게 웃으며, ‘국립서울대학교’의 국. 서. 대의 초성 글자를 모아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뭔가 굉장히 거창한 뜻이 담겨있을 것만 같았었는데 의외의 반전의 의미에 많이 웃었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의미임에 다 같이 웃기는 했지만, 그 단순함조차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 건 서울대학교의 위상 때문인 걸까?
그렇게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신랑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나 온 과정을 늘 덤덤하게 얘기하니까 나도 가끔은 이 모든 일들이 그저 평범하고 쉬운 일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을 옆에서 보면 중요한 시험을 앞에 두고도 시험공부를 머리에서 연기 날 정도로 막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이 더 걱정하곤 하는데, 시험을 보고 나면 결과는 여지없이 늘 1등, 못해도 상위권에 있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은 공부를 별로 안 하는데 어떻게 1등을 하냐고 진지하게 물었었다.
돌아온 대답이 딱 공부 잘하는 엄친아가 해주는 답이었다.
“공부를 안 하는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나는 수업시간에 집중을 해서 듣고 완벽하게 이해하려 해. 혹시 모르는 것이 생기면 수업이 끝난 후라도 꼭 찾아서 알고 넘어가.”
공부 잘하는 녀석들(?)의 일관적이고도 뻔한 대답이지만, 이것이 진리에 가까운 얘기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웃픈 현실인 것 같다. 뭐 대단한 비결이라도 말을 해줘야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변명거리가 될 텐데, 변명의 여지가 없이 만들어 버린다.
대학원 졸업 후에 신랑은 LG화학 연구소에 입사했다. 연구소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었고, 그곳에는 우리나라에 내놓으라는 유수의 연구기업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아파트 같은 라인의 남편들 직업이 80% 정도가 연구원, 15% 정도가 교수, 나머지 5% 정도가 은행원 등, 평범한 동네에서는 이곳에서 5%에 속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80% 일 텐데 대전 연구단지 주변 동네의 분위기는 암튼 수재들의 집합장소와도 같았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특권의식처럼 무의식 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의 학벌과 직업이 좋은 것이 곧 우리 가정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를 가나 남편의 대학교가 가장 먼저 언급되었고 그와 동시에 달라지는 시선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이 서울대를 졸업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파해주었고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의 보이지 않는 어깨도 점점 더 올라갔고 아빠 닮아서 아이가 이렇게 똑똑한가 보다고 말할 때는 정말 우리 아이가 천재일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신랑은 어머님과 아버님께는 더할 나위 없는 자랑스러운 맏아들로,
나와 아이에게는 좋은 학벌과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아빠와 신랑으로.
그런 자리에 있어주었다.
큰 딸에게!
승리야,
너는 늘 아빠는 완전히 천재에 가까운 수재인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하냐고, 왜 나는 아빠 딸인데 전교 1등도 못하고 아빠만큼 공부도 하지 못하냐고 종종 볼멘소리로 말했었지? 엄마는 처음에는 아빠가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이 자랑이면 자랑이지 그것이 왜 너한테 힘든 이유가 되는지 몰랐었어. 그래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다른 많은 아이들보다 너무 많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알고 펑펑 울면서 ‘나는 왜 아빠 같지 않고 이러냐고’ 얘기할 때는 네가 아빠의 스펙 때문에 정말 힘들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아시는 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는데, 당신도 당신의 아버님께서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신 수재셨는데 그것이 지방 국립대를 나온 당신의 삶에 무거운 짐이었고, 늦은 나이까지도 그것으로 인해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씀하시면서 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말씀해주셨어. 그때 엄마는 참 놀라기도 하고, 너의 마음을 몰라준 것이 너무 미안했단다.
너의 꿈이 아빠처럼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빠의 후배가 되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에 가니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아 많이 속상하지, 우리 딸? 그래, 엄마였어도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그래도 승리 너는 아빠의 딸이기 이전에 너 자체로 엄마와 아빠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야! 우리 승리는 누구와 비교될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존재란 말이지.
서울대학교에 가든 서얼대학교에 가든 너의 가치가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리고 너는 무엇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제는 너를 힘들게 했던 생각들로부터 조금은 편안해지는 건 어떨까? 그리고 늘 네가 얘기했던 대로 너는 쌍꺼풀이 없어도 눈이 크고, 몸의 비율도 나름 괜찮고, 다리도 긴 편이고, 손톱도 이쁘고. 이렇게 이쁘고 괜찮은 사람이잖아.
엄마는 네가 그런 당당한 모습들을 마음껏 살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너는 아빠와 엄마의 합작품이니까 아빠의 우월한 유전자가 쪼끔은 반감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가끔^^ 들기도 한단다. 그러니 우리 딸은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면 그것도 스스로 인정할 줄 알면서, 너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해.
오늘 끝나는 중간고사도 분명히 어려웠을 테고 또 자주 그랬듯이 이상한 상황도 벌어져서 충분히 짜증 나는 날이었겠지만, 이따 집에 와서 치킨 먹으며 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