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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일걸즈 Dec 23. 2020

초가을 베를린에서 보내는 편지

Part 2. 외톨이 어드벤처

안녕, S.


베를린에 쌀쌀한 계절이 불쑥 찾아왔어. 한국은 좀 어때? 여긴 지난주까진 기온이 30도를 웃돌아 푹푹 찌더니 며칠 전부터 아침에 부는 바람이 차가워졌어. 유럽에서는 에어컨이 흔치 않아서 집에서도 밤새 창문을 열어 놓고 자야 그나마 시원했는데 요즘은 문을 꼭 닫고 커튼까지 치고 자.

어제는 비가 왔어. 억수 같이 쏟아지는 건 아니었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였어.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어 지는 날이었지. 마침 눈여겨보던 일본 녹차 전문점이 생각나 집을 나왔어. 비 내리는 베를린은 고요하고 채도가 낮아서 화창한 날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어. 건물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빛이라거나 젖은 땅에 비친 자동차 조명 같은 것들 말이야. 쨍한 햇빛도 좋지만 흐린 날에 잔잔히 보이는 빛들은 또 다른 편안함을 주네. 당신은 빛에 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하던 당신의 말이 지겹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빛의 조각들을 찾아 사진에 담고 있어.


오늘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편지를 써.

찾아간 녹차 전문점 안에서 아주 멋진 여성을 만났어. 그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어. 깔끔하게 민머리에 큰 눈, 제 몸보다 큰 재킷과 광택이 나는 검은색 가죽바지까지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이었어.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쪼그라든 심장은 애써 모른 척한 채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넸어. 가까이서 본 그의 눈은 더 컸고 짙은 초록색의 눈이 정말 아름다웠어. 그녀의 이름은 귯소. 정확히는 귀웃소라고 들리는 이름이었어. 귯소는 글을 쓰고 퍼포먼스도 한다고 했어. 어떤 퍼포먼스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일 거라 이해했어. 귯소는 터키에서 태어나 자랐고 8년 전에 베를린에 왔대. 귯소에게 베를린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베를린은 이것저것 섞인 도시여서 좋아한다고 했어. 귯소의 말에 크게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였어.

 "베를린은 한 도시 속 다양한 얼굴을 가진 곳 같아." 가장 눈에 띄는 건 음식점의 종류야. 일식부터 중식, 태국 음식, 특히 베트남 쌀국수 가게가 많더라. 심지어 한국 음식점도 꽤 보였어. 베를린의 힙스터들 사이에서 한국 요리가 인기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듣기도 했어.

음식점뿐만이 아니야. 베를린에 막 도착해서 처음 본 광경이 아직도 선명해. 한밤중이었는데, 육교 아래에서 몇 사람이 노래에 맞춰 슬렁슬렁 춤을 추고 있었어. 어디서 나오는 노래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사람들 사이에 작은 스피커랑 디제잉 테이블이 놓여있었어. 말 그대로 입장료 없는 야외 클럽이었지. 사람들은 한 손에 병맥주를 들고 노래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있었어. 반면에 지금 지내고 있는 동네는 아주 조용해. 젊은 사람들보다 중년의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이 살아. 정말이지 베를린은 어떤 도시라고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곳 같아.

©성지윤

이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났어. ‘오네 ohne’라는 별명을 쓰는 언니인데, 한국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 베를린으로 왔대. 사진을 공부한 사람을 만나 꼭 한 번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는데 베를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더 신기한 건 취향이 정말 잘 맞는다는 거야. 이런 사람과 사진 이야기를 나누다니. 이 사람과는 밤새도록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오네와 내가 만날 수 있도록 도운 건 유튜브였어.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오네와 친구 두 명이 함께 찍은 영상을 발견했어. 두 친구 중 한 명은 디자이너이자 자영업자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오네와 같이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어. 영상 속에서 오네가 사진을 공부하고 지금 베를린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나는 ‘베를린’, ‘예술가’라는 키워드를 달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만나고 싶었거든. 오네의 유튜브 채널도 따로 있었는데 영상 속에서 오네가 가는 베를린의 서점, 찻집, 카메라 가게가 딱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장소들이었어. 나는 곧장 오네의 영상 아래 만나 뵙고 싶다고 메일 주소를 덧붙여 댓글을 남겼지.

오네와 나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처음 만났어. 카페 주인의 음악 취향이 마음에 들어서 오네가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어. 그날 나는 검은색 반팔 티에 개나리색 통바지를 입고 갔는데 오네도 검은 티에 베이지색 통바지를 입고 있었어. 우리는 서로의 비슷한 차림새를 보고 웃었어. 신기한 건 오네와 내가 닮은 점이 옷뿐만이 아니었다는 거야. 오네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역사도 아주 비슷했어.


“엄마가 취미로 사진을 찍으셔서 집에 카메라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사진을 좋아하게 됐죠. 근데 엄마는 사진은 하지 말라고. 힘들 거라고 했어요.”


S, 사진은 취미로만 하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지? 사진 강의를 듣고 밤늦게 집에 온 날이면 쓸데없는 데에 시간 쏟지 말라고 말했을 때 참 속상했는데. 그런데 또 사진에 대해 물어보면 열심히 설명해주는 사람이잖아. 그럴 때마다 헷갈렸어. 당신은 나를 응원하는 건지 아닌지. 사실 내 인생에 사진을 들이게 한 건 당신의 영향이 제일 크다는 건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가족여행을 다녀오면 당신은 꼭 다음날 밤에 우리 세 식구를 불러 모았잖아. 귀찮다는 듯 투덜댔지만 결국 우리는 사진 속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지.

철컥 소리를 내며 필름 슬라이드가 넘어가던 묵직한 소음, 넓은 벽이 없어 방문에 겨우 비춰 보던 당신의 사진들까지 난 아직도 또렷이 기억해. 세상이 디지털화가 되면서 당신도 디지털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 영사기 대신 카메라와 티브이를 연결해 더 자세하고 선명하게 당신의 사진을 볼 수 있었지. 유독 초록빛이 감도는 것들을 좋아하던 당신은 “여기 이파리에 물방울 맺힌 것 좀 봐.” 하며 화면을 확대해서 보여줬어. 카메라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물건이구나. 나는 자주 감탄했어.


오네가 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에 오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 때문이었대.


“제가 선배한테 독일에서 학교 다니는 거 만족하냐고 물었을 때, 선배는 후회가 없다고 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이랑 예술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다르대요. 교수도 지도하고 가르친다는 느낌보다 같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분위기래요. 이 사람들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 자체가 즐겁다고. 유학 생활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다른 것들이 좋아서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선배 얘기를 들으니까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어 진 거죠.”


나는 한국의 대학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가, 어떻게 다른지 감이 잘 안 오더라고. 하지만 오네의 말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열띠게 공부하고 예술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어. 얘기를 듣다 보니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더라.


그런데 요즘 오네는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대. 한국에서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음에도 굳이 낯선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까, 마음이 맞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한국이 더 나은 환경인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들이 불쑥 찾아온댔어.

이런 감정은 오네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아.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에서 지낸 적이 있었어. 그때 나에게 방을 내어준 언니로부터 베를린에서 사는 이야기를 조금 듣게 되었어. 한인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 어느 날 엉엉 울면서 이렇게 말했대. “죽지 못해서 살아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도 기대가 안 되는 하루, 허무함 같은 것들이 그들을 자주 덮친댔어. 이들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또 누구는 결혼하는 모습을 볼 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행성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고 해.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야.

셰어하우스에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 은송이는 전철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어. 학원을 끝내고 전철을 타고 갈 때 마주 앉은 남자애들이 은송이를 힐끔 보더니 웃기 시작했대. 기분이 나빴지만 그들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대. 왜 웃느냐고 묻는다 해도 걔네가 너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고 말하면 더는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정말로 은송이 와 상관없이 웃은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은송이는 베를린에서 살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자주 예민해진대.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어.


오네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오네의 선배를 떠올렸어. ‘나도 꼭 그 사람처럼 공부해야지. 멋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그 자리에 나도 꼭 있어야지.’ 이렇게 다짐하다가도 ‘내가 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하며 나를 의심하고 믿기를 수십 번. 정말이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야.

흔들리면서 크는 거라고 당신이 말했지. 평소엔 뻔하고 낯간지러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당신이 전화로 건넨 그 말은 어쩐지 나를 조금 토닥이는 것 같았어. 한국에 돌아가면 호기로운 표정으로 집 문을 발칵 열고 들어가려 했는데 고민만 잔뜩 안고 돌아가게 생겼네. 그래도 내 앞에 놓인 생이니까. 내가 선택할 미래니까. 조금은 버거워도 버텨보려고. 그때까지 나도 우리 가족 모두 몸 튼튼, 마음 튼튼하게 살아보자.



2019년 9월 13일 초가을 베를린에서 딸, 성지윤 보냄.  


©성지윤
글 사진 성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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