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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이날 Nov 29. 2021

꿈을 가진다는 것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니

 구인난을 찾아봤다. 수많은 인력구인난이 있음에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모든 일은 나이가 적은 숙련자를 원했다. 워드프로세서, 엑셀 등 기본 사무능력을 요하는 곳이든 식당이든, 모두 38세 이하의 적어도 1년 이상, 기본 3년 이상의 경력자를 구하고 있었다.

 관련 자격증을 지니고 있어도 지10여년간 전업주부로만 지내왔던 내가 일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스스로가 잉여인간 같이 느껴졌다. '여태 뭐하고 살았나'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오고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비아 인구의 기대수명은 41세란다. 열대기후의 잠비아는 단방의 백신으로 예방되지 않는 온갖 풍토병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잠비아에서 태어나서 41세에 콱 죽어버릴 걸 그랬나.


 나는 꿈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것도 기대수명이 41세인 잠비아인으로 꿈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한국의 실업자의 40대 초반의 잉여 여성으로서 그들의 꿈을 짐작한다면 잠비아를 떠나 온대지역으로 뜨는 것이 그들의 꿈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의 수명은 제도적인 것보다 지리적인 열세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에게 에어컨을 나눠줄 수 없으니 그들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국가 전복을 꿈꾸거나 19세기 세계 열강을 재현할 수밖에 없는 데, 불행히도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으니 장수의 꿈은 불가항력적 영역이다.


 오렌지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착즙하면 더 달고 진하다. 그런 의미에서 잠비아인들의 꿈은 짧은 수명만큼이나 압축되고 함축되어 인생의 깊고 진한 무언가를 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함과 거룩함이라기보다 가난과 궁핍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기후에서 느껴지는 한낱 보잘 것 없는 존재의 깨달음일 것이다. 선하고 순수한 본성이 생존각투와 엉킨 가운데 그들은 너무 어려서 죽고 너무 늙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안타까게도 생존 존망에 절대적일지도 모를 에어컨의 열망은 그들의 꿈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어컨의 열망을 고3 때 극복했던 나는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뜻하게 지내면서 잉여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병도 없고 힘도 세서 장수할 가능성은 높은 데, 게다가 대학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오고 자격증이 있어도 잠비아의 기대수명 나이가 지났기때문에 서류탈락이다.

 

베이징 시내의 교통경찰 기대수명은 42세라는 데, 이럴 거면   베이징의 교통경찰이 될 걸 그랬나. 하나마나한 소리다.


'PDR', Price to Dream Ratio의 약자로 꿈대비주가비율을 의미한다. 지식전문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기반으로 PDR 지수를 높이라고 말한다. 지금 하는 일에 앞으로의 주요해질 '메타버스'와 같은 미래기반 지식사업을 접목시키라고 말한다. '메타버스'의 영역은 나이도 학력도 장애도 뛰어넘을 수 있으므로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적게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메타버스'의 기반이 될 일이 없는 사람은 독가스 같은 매연으로 가득 찬 베이징 시내의 교통경찰의 수명만큼이나 모호한 일이다.


 잠비아의 기대수명 나이가 갓 지난 나는 초등 저학년 아이의 무선종합장에 하릴없이 ㄹㄹㄹㄹㄹㄹ을 빼곡히 낙서하고 있다. 한 페이지에 ㄹ이 가득차니 마치 미로와 같다.

내 앞날이 미로다.


작년에 본 구인난과 오늘 본 구인난이 다르지 않으니, 나는 꿈보다는 몸빵할 생각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 지도 모른다.

간호조무사과정, 한식조리사과정...... 아니면 나이제한 없는, 머리를 갈아넣어 공시생?


잉여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찾겠지만, 잠비아의 기대수명 나이가 지나서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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