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남편은 군 복무 시절에 귀를 다쳐
건강건진 때마다 청력 항목에 체크가 된다.
일정 주파수가 들리지 않는다는데
내가 보기엔 발음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신혼 초
집집마다 유선 전화기를 쓰던 시절의 일이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울리자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닙니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 또 전화를 받았는데
"아, 제수씨?..." 한다.
알고 보니 아까 그 전화도 동서의 전화였는데,
전화를 받은 남편에게
" 아주버님이세요?" 말을 하고 인사하려던 순간
남편이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남편에게 이유를 물으니
아주머니냐고 묻기에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단다.
하, 누가 들어도 시커먼 남자의 목소리가 분명한 사람에게 '아주머니'라는 하류의 장난을 할까.
또 언제였던가.
남편의 친구 가족들과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떠났을 때다.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인 콘도로 돌아와 잠을 자려고 모두가 불을 끄고 누웠는데,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남편이 누운 채로 "누구세요!" 물으니
밖에서 "정숙이 있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친구를 찾나 보구나' 하는 순간에,
남편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 여기 청소기 없어요!!!"
친구 부인이 누운 채로 배를 잡고 웃길래
나는 나지막이 일러 주었다.
"우리 남편, 사오정이에요"
암튼 연애 때는 남편의 청력 문제를 몰랐는데,
못 들었어도 그냥 미소로 넘기던 그 만의 반응 버릇 때문이었나 보다.
그저, 내가 좋아 죽겠어서 웃는 줄 알았으니까.
함께 한 시간이 쌓여가니, 남편의 그 어정쩡한 미소를 보면 이제는 안다.
'제대로 못 들었구나...'
그래서 남편을 보호자로 세워 병원에 가야 할 때면,
나는 남편에게 몇 번씩 당부를 하곤 한다.
나는 마취하고 검사실에 누워 있어 못 들을 테니
의사 선생님 설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들으라고.
중간중간 못 들었으면 어정쩡 웃어넘기지 말고
꼭 "다시 한번 더 말씀해 주십시오" 말을 하라고.
안 그럼 마누라 죽을 수도 있다고.
엄포 반, 부탁 반으로 챙기고 챙긴 후에 검사를 받는다.
그런 나도 요즘엔 발음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으면
상대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목소리의 톤이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이 또렷하지 않으면
" 네? 뭐라고요? 못 들었어요."를 자꾸 반복하게 되는데 그것도 참 번거롭게 느껴진다.
특히나 물건을 살 때, 매장에 젊은 판매원들은
목젖을 꽉 누르고 발음하는 것처럼 묘한 발음들을 구사하니 좀처럼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남편과 나는 서로 상대가 들었겠지 싶은 마음으로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를 뜬다.
밖으로 나와서는 서로에게 되묻는다.
"뭐라 했어요?" 물으면
"몰라, 할미가 안 들었어?" 한다.
우린 우아하게 늙어 갈 수 없는 요인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귓가에 소곤소곤, 속닥속닥, 이런 조용한 하라방과 할미는 못하게 됐으니
좀 소란스럽더라도 잘 챙겨 듣고, 씩씩하게 앞으로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