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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에서 온 언니 Jun 01. 2022

사랑스러운 엄마

이번 생애 나의 사명

늦둥이 친구랑 양 떼 목장 나들이

지금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을 키우면서 참 많은 돈지랄을 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다시 돌아가 묻는다면 내 인생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었다고 대답한다. 내 가치를 나에게서 찾을 수 없으니 내 아이가 나의 가치가 되었다. 그때는 나의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엄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장난감도 최고, 책도 최고, 선생님도 최고.... 모든 것을 최고로 그 아이가 가지고 보는 세상을 모두 최고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마도 돈이 더 많았으면 10배는 더 해주었으리라. 아니 100배도 아까웠을까.... 그리고 아이의 웃음을 보면 그것으로 잠시나마 행복했다.


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늦둥이 육아와 아이의 사춘기가 맞물려 스멀스멀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큰 아이의 방문이 닫히던 그 순간, 어떤 커다란 벽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코앞에 놓인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아이에게 그저 사랑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자신의 기준으로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아니 그 시선과 말투가 모두 그렇게 느껴졌다.

작은 잔소리에도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해?"라고 물어왔다.

물속에 오랜 시간 잠수를 하면 코와 귀로 물이 들어와 멍멍 해지는 때가 있다. 아이의 질문에 나는 매일 물에 잠겼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뭐하고 살고 있지? 그래 한 번도 저 아이는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어. 내가 좋아서 한거쟎아.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거잖아.'


나를 봤다. 난생처음 본 듯이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출산 후 핑계로 살이 쪄서 100미터도 못 달리는 40대 아줌마가 서 있었다.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몸안에 물이라는 게 다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게 펑펑 울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100일간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새벽에 너무 가기 싫어서 울면서 헬스장을 갔다. 자는 아이를 두고 가려면 새벽밖에 시간이 없었다. 먹는 것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내가 식단이란 걸 했다. 안 먹던 영양제도 먹었다.

늦둥이랑 11시 넘게 늦잠만 자던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보고 다이어트를 하니 큰딸이 아주 조금씩 다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100일간의 모든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주기도 했다. 큰아이가 손수 찍어준 비포 샷은 정말 소중하다.

아이 눈에도 보였으리라. 엄마의 피, 땀, 눈물이...


그때의 다이어트로 나는 다시 제법 봐줄 만한 40대 아줌마가 되었고, 지금은 달리기와 등산을 취미로 하는 동네에서 건강한 언니이다. 늦둥이 친구 엄마들은 87년생, 나는 78년생.... 어디 가나 왕언니를 벗어날 수 없지만 말이다.


10살 터울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색다른 경험이다. 10년 터울로 뽀로로를 다시 보고 같은 동화책을 읽고, 그때 갔던 그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또 다니며 데자뷔인가 싶은 인생을 살고 있지만...(꽤나 힘든 반복이긴 하다. 특히 요즘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데 완전 현타 온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큰 아이에게 했던 모든 실수들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다시 내게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실수는 별게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내 기준에서 해주고 싶은 것 말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먼저 앞서가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강요하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더 크게 자란다. 그 힘을 믿게 되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10년 전 그 난리를 치며 키웠던 아이도 아무것도 안 하고 키우는 아이도 별일 없이 잘 큰다. 오히려 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크는 것 같다. 그리고 단언컨대 사이가 나빠질 수 없다.


육아의 기준은 누구나 다 다르겠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그게 진짜 잘 키우는 거 아닐까? 그 외에 모든 것은 내려놓고 내려놓고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봐주기만 하면 된다. 그 시선으로 아이는 튼튼해진다.


남은 내 인생 엄마라는 폴더에 가장 큰 소망은 그리고 엄마로서의 사명은

사랑스러운 엄마

나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언제까지나 하트 뿅뿅 시선을 받고 싶다.

그저 엄마로서도 물론이지만 한 여자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죽을 때까지 사랑스럽고 싶다.


아내로서도 그런 소망이 있긴 한데... 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아내보다 사랑스러운 엄마가 더 끌린다. ㅋㅋ

왜 그런지는 또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확실한 것은 늦둥이를 낳고 나서 마치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세상이 조금 더 밝은 빛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이다.


좋은 엄마는 거창한 것을 해주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 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는 엄마 아닐까?

오래오래 사랑스럽게  살고 싶다. 사랑스러운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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