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입니다.
무척 더운 날입니다. 종종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 몸으로 밀어 닥칩니다. 걷느라 가슴과 등이 땀으로 젖어 가는 순간에 이 바람은 곧 행복이고 위안입니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면서 걷다가 횡단보도에 섰습니다. 눈이 부셔서 신호등 얇은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내 신호를 기다립니다.
신호등 옆 작은 땅. 보도블럭과 아스팔트 사이에 아주 작은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는 반은 시들고 반은 조금 나은 작은 들풀과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 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작은 땅에 뭔가 왔다 갔다 합니다. 꿀벌 한 마리가 바쁘게 날개를 털면서 이 꽃 저 꽃 왔다 갔다 합니다. 하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한 송이 꽃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더위 속에 그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예전같으면 '참 열심히 산다'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 눈에는 그 모습이 그저 안쓰럽기만 합니다. 적나라하고 치열한 삶은 사람에게나 꿀벌에게나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이든, 안쓰러움이든 우리는 이 하루를 살아 내야만 합니다. '강해서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것이 강하다.' 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덜 중요합니다.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 그 분들과 삶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이로써 제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의 영혼과 정신은 많이 위축되고 눌려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병이 들면, 때론 스스로도 병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면합니다. 초기에는 남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공격하게 되면 우울증이고, 더 심해지면 죽음만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 공격성이 밖으로 향하면 주변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죽음의 기운이 밖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우리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서가 아니라고 할 때, 당신과 내가 더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요? 꿀벌은 답을 못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이 답을 찾기 위해 고난과 위로의 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