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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Jun 16. 2024

더 살아갈 이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입니다.


무척 더운 날입니다. 종종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 몸으로 밀어 닥칩니다. 걷느라 가슴과 등이 땀으로 젖어 가는 순간에 이 바람은 곧 행복이고 위안입니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면서 걷다가 횡단보도에 섰습니다. 눈이 부셔서 신호등 얇은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내 신호를 기다립니다. 


신호등 옆 작은 땅. 보도블럭과 아스팔트 사이에 아주 작은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는 반은 시들고 반은 조금 나은 작은 들풀과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 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작은 땅에 뭔가 왔다 갔다 합니다. 꿀벌 한 마리가 바쁘게 날개를 털면서 이 꽃 저 꽃 왔다 갔다 합니다. 하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한 송이 꽃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더위 속에 그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예전같으면 '참 열심히 산다'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 눈에는 그 모습이 그저 안쓰럽기만 합니다. 적나라하고 치열한 삶은 사람에게나 꿀벌에게나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이든, 안쓰러움이든 우리는 이 하루를 살아 내야만 합니다. '강해서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것이 강하다.' 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덜 중요합니다.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있었다는 것, 분들과 삶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있었다는 것, 이로써 제가 살아갈 이유찾을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의 영혼과 정신은 많이 위축되고 눌려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병이 들면, 때론 스스로도 병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면합니다. 초기에는 남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공격하게 되면 우울증이고, 더 심해지면 죽음만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공격성이 밖으로 향하주변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죽음의 기운이 밖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우리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서가 아니라고 할 때, 당신과 내가 더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요? 꿀벌은 답을 못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이 답을 찾기 위해 고난과 위로의 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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