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공장 Nov 25. 2023

작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쓰나요? 음...

목요일부터 내 일정은 다시 글 쓸 때의 일정으로 돌아왔다. 일정은 아주 간단하다.



9~12시 집필

12~2시 점심

2~5시 집필

8~10 매일의 일지와 브런치



적혀있지 않은 시간에는 미팅을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다시 간단하되 집필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모든 일정을 매니징하고 다시 작품에 헌신하겠다고 결단한지 이틀째....



오늘도 어제처럼 일정을 어겨버렸다. 이유는 다름 아닌 유튜브!



수요일, 인터뷰와 대청소가 끝나고, 런던을 가기 전부터 눈코뜰 새 없이 꽉 찬 스케줄에 드디어 여백이 생겼다. 그렇다고 정말 여백이 생긴 건 아니지만,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랄까? 나름 인터뷰가 끝난 자축이라며 수요일 저녁 먹을 때 튼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지난 드라마 요약본을 오늘까지 계속 놓지 못하고 있었다.



수요일에 영상을 본 이유는, 단지 무언가가 끝났으니 영화를 보고 싶은데, 하다가 시작. 단지 쉬는 거라고 생각하며, 원래 계획에 있던 일지 쓰기와 파일 정리를 하지도 않고 늦게 자는 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목요일에는 한층 피곤한 채로 일어나야만 했다.



수요일에 영상 보는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목요일 오후 집필 시간에도 드라마 클립을 보고 있더라. 짧은 걸 보면 얼른 끝내겠지, 1.75배속으로 보면 끝내겠지 했는데, 오늘 금요일은 거의 하루종일 봤다.



어제는 소설에 나오는 이미지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을 찾다가, 유튜브와 k-드라마의 세계로 빠져버렸고, 안되겠다, 오늘은 노트북의 인터넷을 끄고 작업하겠다, 굳게 다짐했지만, 어제 알게 된 드라마에서 나왔던 배우의 사진이 왠지 모르게 필요하다고 느껴 (그 배우가 지금 내 소설의 남주와 싱크 200%이다. 그 배우를 모른 채로 남주를 디자인 했던 거였지만, 안 이상, 싱크가 완전 똑같은게 정말 신기했다. 배우의 사진을 보면서 해야 ) 그 배우의 사진을 찾다가, 다시 K-드라마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배우의 목소리가 빨려들어갈 정도로 멋진 게 변명이라면 변명. TV도 넷플렉스도 없는 나에겐 또 못 본 드라마나 영화가 얼마나 많은 지... 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짧은 요약본을 찾아 보지만, 결국 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서 클립을 보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버렸다.



시간을 보고, 이럼 안된다며, 다음 영상으로 누르고 있는 나. 한심했지만, 그만둘 정도로 그 생각이 강하진 않았나보다. 거의 오늘은 하루 종일 봤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걸까 생각이 올라왔었는데 그게 아니라 모든 것이 끝난 뒤 (1) 바로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졌든가 (2) 장소를 바꿔서 작업을 했어야 했다. – 예를 들면 카페. 내일은 무조건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그리고 집중력도 근육과 같다. 8월부터 한창 대처해 온 일들은 시간에 바짝 집중해서 끝내야 하는 일이었는데, 글을 쓰는 데에는 다른 종류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천천히 사고하고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맺지 않아도 괜찮을 넓은 인내심의 집중력.



글을 쓸 때 유튜브로 도망 가는 건 뻔하다. 당장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내 글이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




내일은 무조건 일어나서 카페로 가겠다, 다짐한다. 그래도 나름 기특했던 건 전체 40 챕터 중에 25챕터 정도 읽었고, 15 챕터 정도만 남았다. 물론 첫 날 퐈이팅이 넘친 오전에는 그날 다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K-드라마의 세계로 빠져버리면서 원래 계획했던 목, 금, 토를 다 쓰게 돼버렸다.



문제는 이런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찾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그리고 유튜브를 보느랴 하기로 한 작업을 하지 못한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다. 마치 육상 선수가 못하는 게 있는데 기록을 숨기고 말로만 신기록 세웠다고, 잘하고 있다고 코치한테까지도 숨기고 있는 것과 같았다.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들키기 싫었다고 할까?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도와줄 코치님께 공유하지 않고 다 끝나고 실토하듯 잘못을 저질렀고 앞으로 잘하겠다 반복하는 레퍼토리를 계속 했다.



내가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냥 어렵다고, 

또 같은 행동 하고 있다고 그냥 바로 공유하기. 

내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들을 브런치에도 일지에도 더더더더더 적기.

날 것의 글을 쓰겠다, 보여주겠다, 하면서도 정제하고 잘하는 것만 공유하고 싶고 잘하지 못한 걸 숨기고 싶은 내 자신을 계속 마주한다.




오늘 저녁, 같이 일하는 분과 미팅을 했는데, 수요일에 본 인터뷰를 묻고 추천서를 써달라고 인재관리 부서에서 메일이 왔다고 했다. 기구에서 보낸 질문 하나하나를 읽고 직무서와 대조해보면서 내가 이미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미 그녀와 일하면서 다 했다고 증거를 얘기하면서 나를 디테일하게 칭찬했는데, 



영국에서 만났던 내 전 상사도 그렇고, 지금 상사도 그렇고, 칭찬을 들으니, 



내가 이곳에서 인정 받고 있구나, 상대가 나를 인정해주고 있구나, 나는 잘 살았구나, 기분 좋고 감사하면서도, 나는 동시에 멋쩍게 반응하면서 ‘솔직하게 써도 돼. 나한테 네가 어떻게 쓸 건지 알려주지 않아도 돼.’라며 상대의 인정과 표현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제부터 매일 내가 한 행동을 인정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그 시간과 글과 말로 나를 인정해주는 행위가 정말 나에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봤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유튜브를 본 건 잘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니까. 나는 집필 시간에는 집필만 하고 쉴 때만 볼 수 있다. 집중력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생길 것이다. 다만, 일요일부터는 한동안 휴가라 돌아오면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할테지만,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대충 알 것 같다.




매거진 방향:


2024년 상반기 (2월 예정) 에 출간될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에 6시간 작업하면서 생긴 일들, 고민과 사건을 날 것 그대로 브런치에 공유하겠습니다.


(판타지) 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함께 지켜봐주세요.


작가의 고민에 댓글로 생각을 남겨주시면 반영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책이 나왔을 때 왜 어떤 걸로 고민했는지 찾아보는 쏠쏠한 재미도 챙겨가세요.




가끔 아주 가끔 사진도 올라갑니다. @hyunju_writer


작가의 세계관이 궁금하다면: 

*글공장(한글판)

*The Words Factory (영문판, 교보문고)   

*해외에서 구매한다면 --> The Words Factory (아마존 Amazon)                    

매거진의 이전글 판타지 소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