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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Aug 16. 2024

영어를 언제까지 할 거야

본인의 영어 실력에 만족하시나요? 나에게 영어는 매일매일 하는 숙제 같습니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젠 취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여고 시절 영어 시간에 '이걸 왜 배워야 하나',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어요. 그 당시 기준으로는 영어를 못해도 사는데 큰 불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실생활에서 별 필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흥미를 잃었어요.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께서 루마니아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다녀오신 후,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1975년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국가라서 가까이할 수 없는 먼 나라였고, 미지의 세상이었죠. 그 회의에서 안내를 맡았던 여학생들이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이었답니다. 그들의 영어 구사 능력을 보고 놀라셨다네요. 그런 조언이 자극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문법책을 억지로 외우는 영어는 재미없는 과목이었습니다.


고1 때 친구 중,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있는 까만색 세단을 타고 등하교를 했던 친구였어요. 그 세단을 타고 장학퀴즈를 본다고 정동 문화방송국에 함께 갔던 적도 있었죠. 부유했던 그 친구는 영어가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 시간에 유창한 발음으로 책을 읽던,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친구 어머니는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고요. 부러웠고 멋져 보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듣고 말하는 영어 수업을 처음 받아봤어요. 잘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내 실력은 형편없었죠. 일반 수업에서는 두꺼운 전공 원서들을 자주 해석해야 했습니다. 영어로 인한 열등감,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타임지를 구독해 독해 공부를 했었죠. 토익도 시도해 보았지만, 실력이 크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때 영어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면,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진로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죠. 


대학 졸업할 무렵, 사 년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게 뭐냐고 물어보시는 교수님께 영어 실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해주신 말씀을 40년 지난 지금도 기억합니다. 영어를 마라톤처럼 길게 보고 도전하라 하셨죠. 덕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영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활영어 중심으로 조금씩 익혔죠. 하지만 대화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머릿속으로 준비된 영어 문장만 입 밖으로 나오더군요.


부산 남산고에 근무할 때는 동료 교사들과 영어회화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원어민 교사도 초청해서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그 후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이 년 간 지내면서, 커뮤니티 컬리지의 ESL과정에 지원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테스트를 하더군요. 1차, 2차 테스트 성적이 잘 나왔어요. ESL과정을 패스하고, 정규수업 수강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뿌듯했죠.


커뮤니티 컬리지와 연계된 직업교육센터에, 취업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외국인들이 함께 공부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돌아가며 책을 읽고 있을 때, 함께 공부하던 미국인 아주머니가 발음이 좋다고 내게 엄지척을 하더군요. 그러자 담당 선생님도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어요.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이런 사소한 칭찬이 영어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퇴직 후,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고, 영어 성경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내 영어 암송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했었죠. 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통역봉사자로 일했습니다. 세팍타크로 종목의 임원과 심판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어요. 세팍타크로가 동남아 일대에서 성행하는 운동이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죠. 등나무로 만든 특이한 공을 사용하는데, 배구와 축구를 혼합한 운동 같았습니다.


자주 만나던 심판들과 그들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국에 꼭 놀러 오라고 주소를 알려준 충칭에서 온 중국 심판, 기념품으로 인도 돈을 건네주던 인도 심판, 수고한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준 태국 심판도 있었어요. 대부분 멋진 신사들이었는데, 임원진이라면서 매너 없이 행동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감투에 걸맞은 인격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봉사자 중, 영국 주재원으로 근무하셨던 나이 지긋하신 분이 계셨어요. "해외에서 살다 오셨죠?"라고 묻더군요. 어떤 부분에서 티가 났는지 모르지만, 칭찬처럼 들렸어요.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영어 회화 앱을 통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을 이용하니까 손쉽고,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네요. 잠깐잠깐 짧게 하는 공부지만, 스피킹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느낌입니다. 


모국어만이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인지능력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치매 예방은 물론 알츠하이머 증상도 완화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효과에 고무되어, 아마 칠십이 넘어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다 보면 영어를 통해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높은 수준의 영어회화를 원하는 건 아니고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내 필요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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