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언어 공부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포함해 영어와 독일어에 이어 배우는 네 번째 언어이다. 수어를 배우고 싶게 된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수어도 하나의 언어니까, 말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내 꿈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언젠가 수면 아래 숨겨진 이 세상의 이야기를 전할 때, 내가 수어를 함으로써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수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수련회에서다. 수련회에서 그룹활동으로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워서 발표회를 여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치어리딩 수업을 들었는데 수어 수업을 들은 친구가 수어를 연습하는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 따라 해보았었다. 영화 <국가대표>의 OST 'Butterfly' 노래에 맞추어 수어로 표현하는 것인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손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자신들의 노래를 수어로 부른 것을 보고 따라 해본 적이 전부다.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수어를 배워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 학교 교양수업에는 없었다. 수어동아리도 찾아보았지만 당시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유튜브에 노래를 수어로 부른 것들을 보면서 독학을 했었다. 정확히 어떤 동작이 어떤 뜻인지는 몰라도 마치 하나의 율동처럼 익혔다. 제일 먼저 독학한 것이 스텐딩 에그의 '오래된 노래'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줌 수화 수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우 내 이름 석자 정도 수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전체 지문자도 모르고, 수어로 숫자를 세는 법도 모르기 때문에 수어 초급반을 들었어야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어휘초급반을 수강하게 되었다. 독학이 아닌 전문가에게 배우는 일이라 조금은 떨리고 기대도 되었다. 수강 첫날 선생님께서 설문조사를 하셨는데 꽤 많은 분들이 지문자를 알고 계셔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단어를 하나 배울 때마다 선생님께서 예문을 수어로 보여주신다. 정말 신기한 건 수어를 제대로 배워보지 않은 나도 선생님이 수어로 설명해 주시는 예문의 90%는 알아듣는다는 거다. 손동작과 표정만으로도. 너무 신기했다. 지금까지 배워본 언어들은 배운 지 하루 만에 문장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수어는 가능했다. 이게 수어의 매력이 아닐까.
또 하나 신기한 건 표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뉴스에 등장하시는 수화통역사 분들을 보면 표정이 풍부하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만큼 표정이 수어로 말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의문문과 평서문을 구분하는 것도 표정이다. 수어를 배우면서 손동작을 연습함과 동시에 표정 연습도 자동으로 하게 된다. 거울을 보면서 그동안 내 표정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아직은 완전 초보자이지만, 열심히 배워서 수어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