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소리 노노
이전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목사님처럼 생기질 않으셨습니다. 무사고 경력 30년쯤 된 택시기사님 인상이세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설교말씀을 들으면 재밌었습니다. 운전석에서 ‘안녕하세요?’ 하실 것 같은 그분이, 어느 날 부목사인 남편에게 조언을 해주셨답니다.
교인들이 “목사님, 설교 잘 들었습니다. 은혜받았습니다.” 하거든,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하거나 ‘뭘요. 아직 멀었습니다,’ 대답하는 게 좀 더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감사합니다” 하는 건, ‘제가 설교를 잘 하기는 했지요,’ 하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답하기 조심스럽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회 사택에서 제 별명이 ‘전’ 사모였습니다. 부추전이랑 김치전을 자주 했거든요. 후후둑 떨어지는 농도의 반죽으로 부쳐야 테두리는 바삭하고 안쪽은 쫀득하게 익습니다. 몇몇 사모님 댁에 부쳐 보내면, ‘너무 맛있다’고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사택에는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고참 사모님도 계셨습니다. 교회에서 인사만 하고 지내는 편이었어요. 전 반죽을 평소보다 많이 한 날이 있었습니다. 여러 장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리고, 마지막으로 고참 사모님 댁에 배달을 갔습니다. 문을 두드렸더니 안에서 ‘네’ 소리가 납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302호에서 왔어요!”
편안한 옷차림이라 민망하셨는지, 고개만 겨우 내밀고 종이접시를 받으셨습니다.그러면서 “아이고,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하셨습니다. 별로 안 드시고 싶으신가? 부침개가 맛없어 보여서 그러시나? 조금 멋쩍었습니다.
“반죽을 많이 했어요. 맛보시라고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런 거.. 진짜 안 주셔도 돼요. 저는 괜찮아요.”
계단을 내려오면서 기분이 좀 그랬습니다. 괜한 일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접시를 넘기는 손이 부끄러웠거든요. 부침개가 아무리 별거 아니래도 ‘이런 거’라니. 음식 솜씨는 없지만 나눠 먹고 싶어서 가져간 건데, ‘안 주셔도 된다’니. 집으로 돌아와 아직 뜨거운 프라이팬 앞에 손 허리를 하고 서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일까?
‘감사합니다’ 인사하라고 하신 담임목사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씀이 좋았다.”하는 분은, ‘설교 준비하시느라 애쓰셨다, 말씀을 잘 전해주셔서 고맙다, 계속 힘을 내시라’ 격려하고 칭찬하고 싶으신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가요. 그러니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야죠.
사모님의 말뜻은, ‘아기 키우느라 바쁘고 힘들 텐데, 미안하게 나까지 챙기고 그러냐. 고맙게 잘 먹겠다’였겠지요. 접시를 들고 와준 정성을 받기만 하려니 민망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그냥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셨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교인들이 ‘목사님, 이거 드세요. 사모님, 이거 써보세요.’ 하면서 선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집에서 만든 음식도 있고, 명절 선물 세트도 있어요. 집 앞에 두고 가시거나, 택배로 보내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미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매우 난처합니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죄송하고 민망해서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소리가 튀어나오려고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부끄러워요. 이런 상황을 만드시는 분이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곤란하고 당혹스러워서, 주시는 분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받기가 고역인 것만 생각하게 돼요.
성의를 바르게 받는 태도를 몰랐습니다. ‘이거 목사님 드리면 좋겠다.’ 챙겨주시는 마음이 감동이잖아요. 정말 주고 싶어서 주시는 거잖아요. 이럴 땐 “고맙습니다!” 하면서, 감사하고 좋아하는 것이 그분에 대한 예의입니다.
교회 청년 한 분이 우리 아이에게 큰 도움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카톡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아니에요, 사모님.’ 하고 답이 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감사하거든요. 그래서 기꺼이 도와주신 게 고마워서 그런다고 그랬더니. 또 ‘아, 진짜 아닙니다.’ 그러십니다. 내 감사를 계속 거절하시는 느낌? 하하하.
‘도울 수 있어서 도왔을 뿐이니 고맙다는 말까지는 안 하셔도 된다.’는 의미였겠지요.
교회 안에서 ‘Thank you (감사합니다).’를 들을 때가 참 많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답을 하는 게 적절할까요?
영어에 좋은 표현이 많더군요. ‘You're welcome (별말씀을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My pleasure (도울 수 있어 기뻐요). I know you'd do the same for me (그대가 나였어도 이렇게 했을 거잖아요). No problem (아이고, 일도 아닙니다).’ 이 중에 적당한 말로 답을 해보십시오. 물론 우리말로요.
‘사.축.고.미.’ 사람 사이를 윤택하게 해주는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 감정이 들 때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문장을 말합니다. 죽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말하고 싶은 말들입니다. 진심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보다 짧고 정확한 표현이 없어요.
너무 고마운 나머지 그 마음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고맙다는 말 듣기를 지나치게 거북해하면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어요.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해야, 본심이 잘 전달됩니다. 부끄럽고 쑥스럽다고 딴 소리만 하면,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하겠어요.
사랑한다 축복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고 나면, 더 잘해주고 싶어 집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더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일 일을 모르잖아요. 마음이 생겼을 때 즉시 말하면, 그 순간이 막 빛납니다. 말로 하기 어려우면 메시지로도 전해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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