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이유는 없다. 고등학교 때 진로 결정할 때 잠깐 고민해 보고 재미있겠다 싶었다. 홍보는 어떤 시대에서든 꼭 필요한 거고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광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인쇄 광고, 잡지 광고, 편집 디자인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배웠다. 졸업 후 진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기획과 제작. 나는 두 가지 모두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기획하고 내 손으로 직접 제작까지 하는 게 적성에 맞았다. 그렇게 실습도 하고 졸업전시회도 하면서 나름대로 실무 경험을 쌓아 준비했다.
졸업할 즈음에는 취업하기가 정말 힘들었었다. 충무로 광고 기획사들이 문을 닫고 선배들은 퇴사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아주 옛날이야기가 된 IMF 가 그 이유였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과사무실에서 면접을 보겠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가야 했다. 그렇게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98년 겨울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집이 김포였고 강남까지 2시간에 걸쳐서 면접을 보러 갔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릉역 1번 출구. 샹제리제빌딩 안에 MTM이라는 종합광고대행사. 가자마자 심층면접을 본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쿽프로그램을 잘 사용하는지 테스트한단다. 그래서 난데없이 포항제철(그때 당시에는) 5단 신문광고 편집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IMF때 폐업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직원들은 다 퇴사하고, 포항제철 광고가 들어와서 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켰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면접비용을 받았다. 얼마였더라. 5만 원이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바로 출근하라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나의 디자인 인생이 시작되었다.
김포와 선릉역. 98년 12월 겨울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출근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평생 할 상모 돌리기를 이때 하지 않았나 싶다. 자면서 머리는 까치집 짓기 일쑤였다. 침까지 묻었을지 모르는 얼굴로 매번 출근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포항제철에 들어가란다. 신문광고 시안 보드를 가져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화장도 하지 않고 청바지 차림에 첫 광고주와 미팅을 했다. 아니, 심부름이었다.
다행히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담당자가 보드만 쏙 가져갔다. 바빴나 보다. 이런 일이 있었어도 화장은 하지 않고 다녔다. 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신입 디자이너였다. 그렇게 실수투성이 내 첫 직장 생활은 6개월이었다. 젊은 날의 객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만두길 잘했다. 그 후로 여러 회사를 거치며 디자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 떨리지만 무엇이 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워야 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이론이었다. 아직도 첫 회의 때가 생각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광고주와의 소통, 거래처와의 소통, 회의할 때 등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생소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생활 1년 정도 되었을 때 업계 흐름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학교와 실무 격차가 너무 컸다. 실무에서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20년이 넘는 경력이 쌓여도 마찬가지다. 2022년도에는 업무 끝나고 저녁에 HTML을 배우러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나는 영타를 정말 못 치는 학생이었다. 부끄럽게도 선생님이 영타연습부터 하자고 했었다. 교육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수료한 모법생이기도 했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만큼 경력이 쌓여도 내가 모르면 외주를 주거나 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 그래서 늘 배우고 있다.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순간부터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퇴사하면 끝나려나. 최근에는 각종 AI와 씨름 중이다. 특히 ChatGPT랑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왜 자고 일어나면 알아야 할게 한가득인지. 하필이면 디자이너가 되어서, 은퇴해야 하는 나이에 아직도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오늘은 뭘 배워야 할까. 클래스 101, 탈잉, 패스트캠버스, 퍼블리를 기웃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