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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주 Sep 27. 2024

디자이너가 왜 글을 썼을까?

내 무덤 내가 팠지.

2017년 1월.


여의도에 있는 한화손해보험에 갑자기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는 국회 의사당 맞은편에 있어서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서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갔다. 1월이라 제법 추웠었다. 콘텐츠 제작 업체와 업무 협약을 맺었는데 그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때는 디자인 실장으로 함께 참석했었다. 교육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한다. 갑자기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보험회사가 내부적으로 교육을 더 잘하지 않나. 얼마나 좋은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걸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광고주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윗사람 소개로 들어온 듯하다. 역시나 몇 번의 미팅 끝에 일이 무산되려는 기미가 보였다.



이러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데. 내가 이러려고 그 추운 날 여의도 칼바람 맞으면서 걸었던 게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내야 했다. 마음이 급했다. 미팅하면서 광고주가 흥미를 가졌던 부분이 생각이 났다. 그래 이거라도 하자. 처음에 함께 했던 콘텐츠 제작 업체와는 안녕을 하고,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는 신팀장이랑 샘플 작업을 했었다. 콘텐츠와 제안서를 준비하고 다시 한번 미팅자리를 마련했다. 다행히도 한화손보의 니즈에 맞는 콘텐츠 제안이었는지 담당자의 흥미를 끌 수 있었다. 원포인트 레슨. 일주일에 세 번 동기부여 콘텐츠 제공.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계약하게 되었다. 한화손해보험이 신동아화재였을 때, 메리츠화재가 동양화재였을 때부터 여의도에서 몇 날 며칠을 밤새우며 보험사와 함께 해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보험회사와 함께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분야에 특화된 노하우가 있다. 이런 경험이 콘텐츠 제공 계약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문가에게 원고를 의뢰했었다. 설계사님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강사님이었다. 하지만 그 원고가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다. 강사님은 강의를 위한 원고를 작성했지만 우리는 디자인을 하기 위한 원고가 필요했다. 가독성이 있는 디자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원고도 가독성이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글을 디자인적인 요소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문장 한 줄 때문에 디자인이 예쁘지 않으면 삭제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강조되는 글이 그림 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작게 들어가야 하는 영문이 큰 제목으로 디자인될 수도 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인해야 하는 원고는 가독성이 정말 중요하다. 팩트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디자이너들이 작업하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원고를 조금씩 수정해서 디자인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원고를 쓰고 있었다. 내 무덤을 내가 판 거였다.



 보통 디자이너는 기획서나 카피 등은 잘 쓰지 않는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는 기회조차 없다. 카피라이터 또는 기획자가 쓴다. 나는 디자이너였지만 기획서와 카피 등을 계속 써왔다. 언제부터였지. 생각해 보면 욕심이 시작이었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글을 쓰게 했다. 평상시 광고주 미팅 시에는 후에 꼭 보고서를 작성했다. 디자인 작업을 했을 때는 한 장 짜리라도 제작 의도를 작성해서 함께 보여주곤 했다. 매 순간 디자인을 하며 글도 함께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욕심과 경험만으로 글을 쓰기에는 매우 미흡했다. 실력이 열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쩌다가 동기부여 콘텐츠 원고를 쓰게 되었을까. 신세 한탄을 하면서 자료 조사를 정말 많이 했다. 주제를 정해 놓지 않고 눈에 띄는 소재들을 모두 찾아서 쌓았다. 책에서도 찾고, 인터넷에도 찾았다. 누구의 성공 사례, 좋은 글, 명언, 일화 등을 보이는 대로 모으고 또 모았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서 일주일에 세 편씩 원고를 쓰고 디자인 작업을 했다. 디자인 방향까지 정해서 글을 쓰다 보니 쉽지 않았다. 그때 자료조사를 원 없이 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읽은 다 나카 히로노부의 책 에는 이런 글이 있다.


글을 쓰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자료 조사'에서 시작한다. 그다 음 조사한 것의 90퍼센트를 버리고, 남은 10퍼센트에 서 다시 10퍼센트만 추려서 겨우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에서 작가의  생각이 전체의 1퍼센트 이하여도 충분하다. 그 1 퍼센 트도 안 되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99퍼센트 이상의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결국 자료 조사가  '99.56퍼센트'인 셈이다.


다나카 히로노부,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中


평생 디자인을 하면서 자료조사를 했는데 글 쓰면서도 자료조사다. 어쩌겠나 자료조사가 만병통치약인걸.
요즘 오아시를 발견했는데 바로 ChatGPT 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가끔 그때 작업했던 것을 찾아보곤 한다.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도 있다.

이 기회에 적어본다.  


“광고주님 그때 참 많이 부족했습니다.

2년여 동안 계약 유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2년 넘게 반복했다. 이때부터였다. 글 쓰는 것도 직업이 된 것이.


“그래서 글을 잘 쓰나요?”

 “아니요. 써야 하니까 씁니다”


 말 그대로다. 써야 하니까 썼다. 쓰다 보니 보험전문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콘텐츠까지 제작하게 되었다. 플랫폼을 활용해 뉴스레터로 발행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대단한 건 아니다. 다만 매주 화요일에 꼭 발행하고 있다는 것. 눈물 나는 인내력이다. 뉴스레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정말 많다. 천천히 풀어놔야지.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되지. 왜 글을 쓰고  있을까?

시작은 회사에서 해야 하니까 썼었다. 하라면 하는 게 사회생활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시 빼고 모든 장르를 즐긴다. 시는 지금 읽어도 어렵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직관적인 글이 좋다. 그래서 어린이 신문 읽는 걸 특히 좋아한다. 어린이도 알기 쉽게 얼마나 잘 쓰는지. 닮고 싶은 글쓰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틈만 나면 활자중독자처럼 계속 무엇인가를 읽는 걸 좋아한다. 스마트폰, 웹, 책 무엇이든 틈만 나면 읽는다.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젠  나도 쓰고 싶어 졌을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쓸 기회를 만들었을까? 그러면서 은근슬쩍 누군가 등 떠밀어  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내 무덤 내가 팠다고 하지만 은근히 즐겼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아직도 글 쓰는 게 즐겁고 행복하진 않다. 써야 하니까 쓴다. 

물론 어느 순간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긴 하다. 고민하며  힘들게 쓰고 나면 어찌나 뿌듯한지.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다. 콘텐츠 하나하나 만들어서 발행할 때마다 자식 낳아서 분가시키는 것  같다. 이 녀석 잘살아야 할 텐데. 사랑 많이 받아야 할 텐데. 항상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보낸다. 제발 나가서 효자노릇 좀 하자.


디자이너지만 글을 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점은 내 맘대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마음껏 써보고 디자인해 본다. 이런 시도 끝에 우리만의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말은 거창하지만 디자인 업계에서 퇴보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또 다른 무기 장착.  


이 업계에서 목소리 좀 더 크게 내면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 장착이라고나 할까.

나를 믿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은 노력? 몸부림? 열정?


뻔하지만 진리다.

글쓰기는 어느 분야에서나 필수템



_책 「쓰지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中 문현주 부분 발췌 그리고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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