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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이 Dec 23. 2021

스웨덴으로(1)

스웨덴 결혼일기(2)

코로나가 잦아드나 싶던 시기.

무리없이 스웨덴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푹 놓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출국을 약 열흘 남겨두고 변이 바이러스가 퍼졌다.


오미크론이라 불린 놈은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각 대륙을 향해 번져갔고, 한국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의 일정은 12/4-12/12. 그리고 12/3이후 한국으로 입국하는 사람을 대상으로는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모두 열흘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뉴스가 들려왔다.

나야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을 예정이니 크게 상관이 없다지만 엄마는 꼼짝없이 열흘간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엄마에게 달가운 뉴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니 혼자 우째 보내노."


하며 엄마는 내년 연차를 끌어당겨 쓰기를 택했다.

졸지에 내년에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이 무거웠다.


함께 가기로 했던 이모네 식구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엄마가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소리인데 직항도 없는 스웨덴에서 경유를 해 가며, 코로나 시국이라 각 나라마다 심사가 까다로울텐데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엄마가 그 깐깐한 심사를 모두 겪으며 홀로 한국으로 올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항공권은 여지없이 변경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변경해야만 했다.

스웨덴에서 '유럽이 아닌 나라' 를 통해 들어오는 여행객들은 입국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것이다.


터키항공 측에 연락해 이러저러한 사유로 터키를 거쳐서는 비행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표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120불을 주고 산 표인데 30불만 환불해준다고 했다. 단순 변심도 아니고 코로나로 인한 입국 규제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왜 90불은 날려야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래 그런 것' 이라고 했다. 자릿값은 환불해주지 못한다는 터키항공측과 꽤 오랜 시간 입씨름을 벌였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말은 "Feedback" 페이지에 글을 남기라는 거였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쓰겠다.



이젠 이모네 식구들이 없으니 남자친구가 차로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다.

결국 가장 처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밤 비행기를 다시 예매했다. 엄마는 파리 경유 인, 네덜란드 경유 아웃인 비행기 표를 보며 "코로나 구덩이로 들어가네." 했다.


하루 일찍 공항으로 가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이모네 식구들과 하루를 보냈다.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한동안 볼 수 없을 한국의 이 하늘은 유난히 현실감이 없었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도착하자마자 검사가 가능했던 인천공항 2터미널 내 검사센터. 그리고 눈부시게 예뻤던 하늘.

 


인터넷에서 각종 후기를 읽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이 없어 출국 대기 시간이 더 짧다는 글, 코로나 시국이라 체크인 시 이것저것 서류를 많이 따져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는 글. 결국 일찍 도착해 최대한 빨리 체크인을 하고 대기하는 길을 택했다.


우리는 전자였다.

염려가 무색하리만치 별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다만 스웨덴으로 향하는 내 표가 편도였기에 스웨덴에서 나가는 티켓을 요구했을 뿐. 아일랜드로 가는 티켓을 보여주자 이 과정 역시 쉽게 지나갔다.


엄마는 처음 와 보는 인천공항에도 크게 감탄하거나 신기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마 '나를 보낸다' 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빨리 끝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엄마에게 늦는 것보다야 낫지 않냐고 괜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입국심사도 빠르게 마치고 인천공항 안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들어와보는 곳인지. 면세점을 본 엄마는 그제서야 "이게 말로만 듣던 면세점이가? 여행가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거 맞네." 하며 신기한 기색을 보였다. 그마저도 사람이 많아 쇼핑은 포기해야 했지만.

(우리는 "코로나 양성뜨면 못 돌아온다" 며 마스크와 셀프소독, 사람 많은 곳은 가지 않기 등의 방역수칙을 미친듯이 준수했다.)



오는 이는 줄었어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트리, 붉은 꽃 등등을 채워뒀던 인천공항 곳곳.



멀미가 심한 우리 모녀는 진작부터 붙이는 멀미약을 사용했다. 약효가 들 무렵이 되자 엄마는 잠이 온다며 물먹은 솜처럼 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며 나는 늘 혼자 오가느라 찍지 못했던 공항 창가 인증샷을 엄마에게 부탁해 찍었다.



자고로 공항은 츄리닝 바지와 함께 해야 제맛인 것이다.



멀미약의 여파였는지, 비행기에 타자 마자 우리 모녀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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