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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해바라기

by 아론의책

고흐의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이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염없이 해바라기를 바라보다가, 또 바라보다가, 문득 고흐에게 묻고 싶어진다.


“고흐형, 해바라기 왜 그리셨어요?”


그러면 고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주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화가로 남은 고흐는, 살아 있는 동안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고흐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아닐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아를에서 고흐는 햇빛이 자연에 스며드는 장면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빛과 자연을 관찰하고 마음에 투영된 생각을 그렸던 나날들.


그의 그림 속 색감이 유독 강렬하고도 따뜻한 이유는, 바로 그 빛 때문이었을지도.


세잔이 ‘생 빅투아르산’을 바라보며,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해가는 산의 빛깔을 동경하고 죽는 날까지 자연과 빛을 쫓았던 것처럼, 고흐 역시 아를에서의 삶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빛과 자연이 가진 힘은 인간의 감각과 관찰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빛을 오래 바라보면, 그 안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성가족 성당’.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신고딕 양식의 건물은 자연과 빛의 찬미이자 고딕 양식의 완성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빛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예술가의 시상은 ‘심상’을 통해 세계에 탄생한다.


그중 백미가 고흐의 해바라기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다른 해바라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뜨거운 기다림이자 간절한 바람이다.


그림 속 해바라기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강렬하게 타오르며, 강한 생명력과 그리움을 동시에 전한다.

그가 얼마나 노란색 물감을 덧칠하고 덧칠했는지, 그 열정이 고스란히 그림 속에 살아 있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진심으로 기뻤고, 설렜다. 무언가 좋은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들떠 있었다. 왜냐하면 고갱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평생 외로웠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늘 마음 깊은 곳에 외로움이 고요하게 머물러 있었던 사람.


그런 그가 아를에서 유일하게 기쁘고 설렜던 순간은, 예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고갱)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예술가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고흐의 바람을 테오(고흐의 동생)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테오는 고갱에게 후원을 제안하며, 그를 아를로 오게 하였다.


이 소식은 고흐를 들뜨게 했다. 어린아이처럼 설렜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갱이 좋아할 만한 방은 어떻게 꾸밀까?”

“무엇을 그려놓으면, 고갱이 반가워할까?”


그렇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고갱의 방을 준비하면서, 고흐는 고갱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남미의 태양을 고갱에게 선물해 볼까?"


고갱이 페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고흐는 잘 알고 있었다. 남미의 강렬한 태양과 색감,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 줄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흐는 열정적으로, 온 감정을 쏟아 그림을 그렸다. 남미의 태양보다도 더 눈부시게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고흐는 단순히 해바라기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고갱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림을 통해 고갱이 기뻐하길 바랐고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랐다.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행복한 상상이 해바라기에 묻어난다.


고흐는 그렇게 고갱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마음이, 해바라기의 붓터치 속에 담겨 있다.


유럽에서 미술 가이드로 살아오며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삶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눈물 젖은 빵이 있다.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 속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그중에서도 ‘해바라기’는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작품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그가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 그러한 설렘이 그림 속에 흘러넘친다.


고흐는 죽었지만 해바라기는 오늘도 말하고 있다.


"난 참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어"


고갱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 고흐의 마음은, 그림 속에 스며들어 향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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