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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Jan 14. 2024

인간, 그 끝없는 물음표

[작별인사] 김영하

[작별인사]
김영하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 질문을 김영하 작가는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 클론과 인공지능을 곁들여 던진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이는 인류가 사유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의과학이 발달해 내 심장이 멈추더라도 다른 사람의 심장이 (호환만 된다면) 내 몸 안에서 뛸 수 있는 세상이 된 오늘날까지, 인류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이다.


나의 의식이 클라우드에 업로드되거나 영구적인 장치에 이관되었다면 그것은 여전히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오롯이 정신적인 부분만 나를 정의하는가. 정신적인 부분만이 중요하다면 물리적인 뇌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안에 난잡하게 짜여진 신경 다발의 지도가 정확히 일치하게 모사만 된다면 되는가. 마음과 기억이라는 것들은 실재하는가. 오롯이 그것만이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가.


이러한 질문은 그 끝이 없으며, 명백한 정답이라는 것도 없다. 우리는 늘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하는 차별점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 개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서로 다른 생김새와 나고 자란 환경, 미묘하게 다른 염기서열, 코의 높이나 억양과 같은 외적인 요소 이외에 우리는 서로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김영하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 안의 휴머노이드들은 죽음 (영구 정지 및 삭제)에 대한 두려움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구동을 위한 에너지가 부족하면 절박하게 에너지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게 우리가 느끼는 생존에 대한 갈망과 사실 얼마나 다른 걸까. 이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인간도 DNA라는 코드에 의해 구동하는 프로그램에 감각과 감정이라는 변수가 추가된 장치일 뿐이지 않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작별인사' 안 휴머노이드들도 생존을 위해 각자의 제작 목적이나 경험을 토대로 한 학습에 기반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고 이를 이행한다. 기계 장치가 스스로 경험을 쌓고 학습을 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실제로 요즘 딥러닝 AI가 그러하듯이) 다시, 우리를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이 소설에서 주인공 철이가 최초의 용기(容器)랄지, 그를 품고 있던 최초의 몸을 떠나게 되었을 때, 고양이 ‘데카르트’의 몸에 들어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해 보았을 때 존재가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주체, 그 의식이 존재해야만 이 모든 생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명제가 바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철이의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순수히 의식으로만 존재할 때, 상상만으로 특정 감각을 느낀다고 착각하기도 할 만큼 감각이란 절대적으로 의존하기는 어려운 신호다. 하지만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그가 이 감각을 착각하기 위해서는 그 감각을 경험해 본 기억이 살아있는 의식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감각은 거짓일지언정 그 의식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으며, 인간이 아닌 그에게도 의식이 존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나는 김영하 작가가 철이를 통해 인간의 정의에 대한 데카르트적 질문을 소설로서 구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코딩과 공학으로 태어났지만, 마음을 가지게 된 철이는 영속을 거부하고 사람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이 인체와 흡사하게 모사된 기계장치일 뿐임에도, 통합된 합리성이 아닌 개별성을 선택한다. 그의 의식이 그를 정의하며, 그것이 그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철이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다들 공상과학, 먼 미래에만 존재하는 개념일 것이라 생각했던 인공지능과 AI, 클론의 시대는 이미 우리의 발치에 와있다. 딥러닝 AI들은 학습하고 그 결과를 이용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줄 알며, 무한한 수준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이 흐름 속,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더 명확하게 정의할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담으로 이 책을 읽고 난 뒤 엄마와 나눈 이야기 중 하나가, 김영하 작가의 능력이다. 김영하 작가는 주로 소설에서 무겁고 어두운 플롯을 자주 다루는 반면, 에세이나 방송에선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제법 가볍게, 듣는 이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게 던지는 능력이 있다.

좋은 글은 읽고 난 뒤 독자가 스스로 곱씹으며 여러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스스로의 관점을 길러주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글을 읽고 현 시대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본질에 대한 몇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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