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curen Bodega and Viñedos
리오하의 주도, 로그로뇨에는 도심 곳곳에 와이너리들이 위치하고 있다. 프랑코 에스파뇰라 Franco-Española처럼 요새 같은 대형 와이너리들이 있는 반면, Arizcuren처럼 동네 작은 상점 정도 규모의 와이너리도 있다. Arizcuren은 골목 안 쪽, 식료품점이나 공구상 같은 평범한 가게들을 지나 한참을 찾아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마이크로 와이너리의 창립자 Arizcuren은 원래 건축가로, 와이너리 한편에 건축사무소를 두고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와이너리 내부에 아무도 없어 머뭇거리다 바로 옆에 위치한 건축사무소에 물어보니, 건물 도면을 그리고 있던 직원이 나와 친절하게 우리를 응대해 주었다.
건축가가 세운 와이너리라고 하니 신생 와이너리 일 것 같지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Arizcuren 집안은 5대째 포도밭을 경작하고 와이너리에게 포도를 판매해 오던 집안이라 판매 후 남은 포도로 와인을 담기도 해 실질 양조 경력은 꽤 있는 편이다. 외려 오랜 시간 양조용 포도를 재배해 왔으니 포도와 땅에 대한 경험치는 웬만한 와이너리를 능가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Arizcuren의 건축 디자인에서 미니멀한 특징이 보이듯, 와인에서도 재배된 포도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선호한다. 해충제 등을 전혀 쓰지 않고, 발효에 대형 토기, 콘크리트 등을 주로 활용한다.
Arizcuren이 소유하고 있는 밭은 주로 리오하 오리엔탈 Rioja Oriental에 위치해 주요 품종은 뗌쁘라니요가 아닌 가르나챠 Garnacha와 마주엘로 Mazuelo이다. 필록세라의 영향을 받지 않아 접목 없이 기존 뿌리를 그대로 사용해 왔으며, Arizcuren은 리오하 알라베사 Rioja Alavesa에 100년 이상된 밭도 보유하고 있다. Arizcuren에서 생산하는 싱글빈야드 와인들은 왁스에 그 특정 밭의 흙 섞어서 씌워 특색을 더 잘 보여준다.
방문 당시 따로 투어프로그램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테이스팅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한 덕인지 직원분이 우리에게 내부 시설 투어를 시켜주었다. 대략 30 평쯤 되어 보이는 협소한 공간 안에 발효조, 숙성용 오크통, 그리고 병입과 라벨링 시설까지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캡 관리로는 콘크리트에서 사람이 직접 펀칭다운 punching down 하고, 야생효모를 많이 활용한다고 하니, 내추럴에 가깝게 생산한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 본격적인 양조를 시작한 소형 생산자답게 와인은 도전적이고 독특한 게 많았다. 완성도 측면에선 사실 물음표가 많았지만 리오하 오리엔탈의 가르나챠 Garnacha 중심 필드 블렌드와 그라시아노 Graciano 나 까리냥 (리오하에서는 Mazuelo 마주엘로라 고 부른다) 단일 품종 와인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와인들이 많았고, 이젠 사라졌다고 추정되는 품종들이 섞인 와인들도 있었다. 흥미로운 라인업을 가진, 도전적인 와이너리라 한 번쯤은 방문해 보기 좋았다.
Finca el Foro 2021 (Single Vineyard, Garnacha 60%, Mazuelo 30%, other variety-Tempranillo, Viura 10%, 20개월 간 대형 french oak barrel 숙성)
Acidity; M+
Tannin: M
Length: short
Acl: 14.5% abv
Color: ruby-violet
Notes: candy, prune, violet, 장미, 삼나무, 아주 약간의 바닐라
0.7 Hct 남짓의 모래 토양 작은 밭에서 재배한 포도들로 만든 싱글빈야드 와인. 자연스레 여러 품종이 섞여 약간 필드 블랜드 느낌이 난다. 비록 여운은 짧지만 저온 침용으로 1차향, 특히 꽃향이 풍부한 와인이었고 가르나차 특유의 연한 보랏빛이 비치는 루비 컬러의 와인이었다.
Barranco del Prado 2021 (Single Vineyard, Garnacha 97%, 2% Calagraña, 1% Tinta Velasco. 프랑스산 오크 18개월 숙성)
Notes: cherry candy, cranberry, raspberry, 커피, 삼나무, 젖은 돌, 유칼립투스, lavender
현재는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는 품종 2종을 포함하는, 130 년 이상된 0.32 hct 크기 밭 (축구장 사이즈)의 아주 작은 밭에서 난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다. 리오하 치고 상당히 높은 고도 (768m)에 위치하며, 나무당 0.5 kg (약 2병 분량)만 수확해 엄청난 농축미를 보여준다. 허브와 미네랄 느낌이 상당했고, 특히 라벤더 향이 강했는데, 몇 년 전 건너편 밭에 라벤더가 많이 심겨진 이후로 이런 향이 난다고 하여 흥미로웠다. Smoke taint처럼 바람에 유기물이 날라와 포도 표면에 붙는걸지도. 아직 마시기엔 너무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고, 최소 3년은 더 숙성해야 할 것 같았다.
Apuntes de Arizcuren (70% garnacha, 30% Mazuelo, 재사용 프렌치 오크 3년 숙성)
Acidity: H
Body: M
Notes: honey, 체리 리큐르, 아몬티야도 셰리 같은 산화 뉘앙스 (견과, 산화향)
테스트용 라인업인 아푼테스는, 매번 그 구성과 와인이 달라지는 재밌는 리미티드 와인이다. 보통 판매보단 연구와 지인들과의 나눔을 위해 만든다는데, 운 좋게도 조금 맛볼 수 있었다. 이번엔 3년을 숙성한 로제와인이었다. 독특하게도 전형적인 저온 탄산침용한 가르나차의 키르슈 같은 뉘앙스 이외에 꽤 진한 산화 뉘앙스를 풍겼고, 짠기가 느껴졌다. 컬러와는 괴리가 큰 와인이었다.
Solo Garnacha 2021 (Garnacha 100%, 재사용 대형 프렌치 오크 12개월)
Acidity: M
Tannin: M+
Notes: raspberry candy, strawberry candy, 삼나무, 허브
리오하 오리엔탈 지역 500-600m 고도에 위치하는 밭에서 나는 가르나챠로 만든 싱글 버라이어탈 와인. 가르나챠는 리오하 오리엔탈에서 한때 가장 많이 재배되던 품종이지만, 오늘날에는 약 10%밖에 재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높은 알코올과 종종 탄산침용에서 유래된 단순한 캔디향이 좀 불호이지만… 상당한 팬층이 있는 품종임에는 이견이 없다. 검은 과실보다는 붉은 과실이 더 많이 났던 것 같고, 오크향이 나지만 강하지는 않고 좀 더 삼나무 향이 강한 와인.
Solo Mazuelo 2022 (Carignan 100%, 12개월 프렌치 오크 및 12개월 콘크리트 탱크 숙성)
Acidity: H
Body: H
Tannin: H
Notes: cranberry, blackberry, black plum
아직 어리고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혀에서 느껴지는 모든 질감이 강렬했고, 타닌도 묵직하고 타이트했다. 아직 2,3차 향은 별로 없고 1차향 위주의 와인이었다.
Solo Graciano 2022 (Graciano 100%, 대형 프렌치 오크 7개월 숙성)
Notes: herbs, dark fruit, palate에서는 담배, vegetal
Rustic 한 느낌의 직관적인 와인이었다. 보통 그라시아노는 뗌쁘라니요 블랜드에 한 1-5% 정도 섞는 품종인데, 이걸 100%로 한 와인은 처음 맛보았다. 약간 herbal infusion 느낌으로 쌍화차, 인삼차 같은 느낌이 났다. 저온 침용을 했음에도 과실향이 약해 솔직히 말하자면 와인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Solo Maturana 2022 (Maturana 100%, 대형 프렌치 오크 7개월 숙성)
Acidity: M
Tannin: M
Notes: bell pepper, forest floor, licorice, prune, 건자두
90년간 없어졌다가 최근 재발견되어 복원 중인 품종으로, 유전적으로 기원은 프랑스이다. 현재 리오하의 와인생산자 중 약 0.26%만 키우고 있다고 한다. 산도가 높고 피망 같은 피라진pyrazine 이 강해 그라시아노와 같이 블랜드에 캐릭터와 구조감을 주기 위한 품종으로 보이며, 약간 shiraz 같은 진한 보라색의 와인이었다.
독특하고 도전적인 와인을 다양하게 시음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리오하 알타나 알라베사의 와이너리들도 좋았지만, 이 멋진 와이너리로 로그로뇨를 방문한 보람이 확실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