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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04. 2020

아던 총리는 왜 코로나에 부활절 토끼를 말했을까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뉴질랜드와 코로나


올해 1월에서 2월 초, 한국에 다녀왔었다. 한국은 2월 초부터 모두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뉴질랜드에서는 아직 코로나19는 먼나라 '카더라' 수준이었다. 그러다 3월 말, 뒤늦게 이 외따로 떨어진 남반구 섬나라에도 올 것이 왔고, 일일 확진자가 두자릿수를 오락가락하자 뉴질랜드 정부는 바로 Lockdown을 선포했다. 뉴질랜드의 전략은 박멸(eradication)이다가 지금은 억제(containment)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극도로 보수적이다. 여전히 지역감염 확진자 0명의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들의 최대 연휴 중 하나인 부활절, 그리고 ANZAC Day(우리의 현충일 개념) 등이 지나갔다. 아들 S도 학교를 못가고 나도 구직 인터뷰를 모두 화상으로 치르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러다가 확진자 수가 줄고 지역감염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뉴질랜드 정부는 Level 1을 선포했고, 6월 초에는 세계최초로 종식선언을 했다.

 Level 1이 된 날부터 모든 게 전으로 되돌아갔다. 102일동안. 그러다가, 어떤 남자가 확진이 되었는데 도무지 감염경로를 알 수가 없었다. 모두 긴장했고, 역시 그 가족을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다시 두번째 Lockdown이 발령되었다. 내가 있는 오클랜드만 Level 3(등교금지, 출퇴근금지, 배달 및 테이크아웃만 가능, 지역(local) 내 이동만 가능)이고 다른 뉴질랜드는 Level 2(일상생활 가능하나 2m 간격 유지)였지만 사람들은 두번째 Lockdown을 오히려 더 힘들어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9월 중순엔 전국이 Level 2, 다시 지역감염은 0 수준에 국경에서만 일일 확진자가 3-4명 발생하는 수준이다.)


보이는 특별함


뉴질랜드는 당연히 운이 좋았다. 처음부터 국경을 닫고 시간을 벌었다가, 결국 닥치자 준비해둔 대로 차근차근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뉴질랜드 시민(인구 500만)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말을 잘 듣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료인력이 부족한 이 섬나라로서는 우리나라처럼 Lockdown을 하지 않아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나리오는 바로 의료붕괴로 이어져서 절대 실험할 수가 없고, 자신다 아던 총리는 내가 본 그 어떤 지도자보다도 결단력있게 적시에 결단을 내리고, 매일 국민들에게 그걸 소통했다. 그녀가 -M&A를 결정하는 사모펀드 투자자처럼- 철저히 시나리오 모델에 의거해 결정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했다는 사실은 계속 기사로 보도되었다.

나에게는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특별했던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건 이런 전례없는 상황에서도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정말 어떤 나라인지 느끼게 해준 것들이다. (what this country is made of).


보이지 않는 특별함


첫번째는 아던 총리가 4월 초, 치아 요정(Tooth Fairy)와 부활절 토끼(Easter Bunny)는 필수 근무인력(Essential Worker)이라서 이번 부활절에도 집집마다 찾아갈 수 있다고 연설하던 것이다.

https://images.app.goo.gl/NVfXHHQocVZx2GjM6


거의 매일 빠짐없이, 아던 총리는 'Be kind to each other'을 강조했다. 500만의 팀인 우리가 하는 행동이 생명을 살리는 거고, 우리는 이럴 때 더욱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원래도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치며 인사하는 문화지만, 코로나 시대의 이들은 강박적일 정도로 서로 웃고 배려하는 눈빛을 보내고, 이웃이나 아는 사람들 간에는 괜찮냐고, 도움 필요하면 꼭 얘기하라는 말을 주고 받는다.

집집마다 (여긴 모두 주택) 창문에 테디베어를 놓아두는 것이 서로에 대한 응원의 표시였고, 부활절 즈음에는 저 연설과 함께 우리 집과 이웃집 곳곳마다 부활절 토끼 그림이 붙고, 얘네 현충일에는 순국선열을 그리는 상징인 양귀비꽃 그림이 창문마다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서로를 응원하고 우리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다.

https://images.app.goo.gl/3kNVgn1Z7Ju3EgNE7


두번째는 얼마 전 Dr. Bloomfield와의 점심식사가 경매에 부쳐졌고, $13550 NZD에 입찰된 일이다. 우리로 따지면 중고나라격의 Trade Me 라는 사이트에서 경매가 부쳐졌는데, 결국 얼마까지 금액이 올라가는지 기사로 매일 나오기도 했다. 유명인과 점심 데이트를 경매에 부치는 건 얘네들의 문화이다. 그러나 나에게 신기했던 건 지금 이 코로나바이러스 대항의 최전선에 선 (우리로 따지면 정은경 청장님과의) 책임자와 점심식사를 할 여유(??)였다.

https://images.app.goo.gl/z7ViHmBfAbHEs8pb9


어느 나라에서나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나라만의 역사를 쓰고 있다. 인구수, 밀집도, 지도자의 역량, 의료진의 양과 질, 국경 폐쇄의 시기 및 정도, 시민들의 수용 정도 및 다양한 반항세력(?) 등 수도없는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만, 역시 위기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본질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의료역량, 높은 시민의식(마스크), 공항 및 국경에서의 철저한 관리 등은 아주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특별한 점이다. (반면 과열된 종교 현상, 그와 이어진 세대 간 단절 등도 사실 이 위기를 통해 드러난, 바로 지금 우리의 단면인 것도 같다.)

그런 면에서보면 뉴질랜드는 국경에서 제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부분이나 호텔에서 격리중인 사람들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내보낸 것이 뒤늦게 발견되서 시민들의 모두 실망/격노하는 일도 있었고, 처음 Lockdown이 발령되었을 때 엄청난 사재기도 있었다. 이 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Lockdown 이후 가정폭력 희생자나 이혼/별거 가정도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한다. 지도자의 결단력과 규정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은 있지만, 막상 관리 역량이나 응집된 시민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상 초유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친절한 행동의 중요성을 알고 표현하는 시민들, 또 아이들의 동심을 중시하는 (자신도 2살짜리 아이의 엄마인) 총리, 상황 최고책임자와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는 것 등은 나에게 굉장히 새로웠다. 마치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Humane) 부분을 중시한다는 느낌이랄까.


사회마다 겪는 거대한 테스트


여유가 있다는 것은 꼭 내가 할 일을 다 끝내고 여유를 찾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약간의 버퍼를 남겨두는 것, 그리고 나의 작은 관심이 타인에게 큰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 그래서 우선순위가 항상 급박하고 경쟁적인 환경에서 온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크게 와 닿았다.

Covid 19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 모두는 매일 이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고 있고, 인간 집단 전체로도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곳에서 이 현상을 이렇게 겪고 있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나라에 있었어도 행운이었을 것이다. 지구상에 훨씬 더 절망적인 장소가 많으니까. 하지만 바이러스든 뭐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포인트다. 이것은 거대한 테스트이고, 내가 또는 내가 속한 사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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