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하루 앞뒀던 날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실컷 놀리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귀에 꽂히는 첫째의 음성.
"엄마, 나 쉬 마려!"
"쉬 마려? 아까 놀이터에서 이야기하지. 우리 조금만 참아보자."
"어떡하지? 쉬 마려!"
첫째는 엉거주춤한 포즈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쉬 마렵다를 연발했습니다.
쉬 마렵다는 아이의 재촉에 제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만약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가 쉬를 하면 어떻게 하지?'
그 와중에 반갑게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저는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재빨리 싣고 첫째도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짐을 한가득 든, 지쳐 보이는 40대 여성분도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첫째는 쉬 마렵다를 연발했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지... 가자마자 쉬부터 뉘여야겠다.'
둘째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둘째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첫째가 엘리베이터에 쉬하는 대참사를 겪을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야, 조용히 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40대 여성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앙칼지게 이야기하던지 순간 엘리베이터에 찬물을 확 끼얹은 듯하였습니다.
제가 얼른 아이들을 타이르려는 와중에 다시 목소리가 끼어듭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니야."
머리가 조금 큰 첫째는 40대 여성분의 고압적인 눈빛과 목소리에 곧바로 주눅이 들어 얼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둘째는 그 여성분 보란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악~! 악~!"
"이러지 마. 제발 조용히 해!" 제가 둘째를 말리는 와중에, 40대 여성분이 읊조립니다.
"아이 씨. 이게 진짜."
제가 없었으면 둘째를 한 대 쥐어박았을 것 같은 고압적인 말투와 눈빛이었습니다.
'띵동'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분이 내릴 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분은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도 "씨..."라고 읊조렸습니다. 똥이라도 밟은 냥, 운수가 더럽게 없다는 냥 그 난 말투. 그리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도 시선은 저와 아이들에게서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 경멸스러운 시선. 혐오스러운 벌레라도 본 듯한 표정.
그분의 목소리와 시선이 서슬 퍼런 칼날처럼 제게 꽂혔습니다. 그런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아본 것은 제 생에 처음이었거든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엄마가 되면 생판 모르는 남에게 그런 벌레 보는 듯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그날 밤 잠이 들 때까지 그분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생각하기 싫은 장면이 계속해서 생각날 때는 참 괴롭습니다. 더 괴로웠던 건 그분이 집에 들어간 뒤의 모습까지 상상이 되더라는 겁니다.
"여보, 나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맘충 만났어."
"맘충?"
"응. 애 둘을 데리고 탔는데, 애들이 어찌나 떠들던지. 한 명은 소리까지 냅다 지르더라?"
"그래? 맘충 맞네. 치킨이나 먹자."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 둘을 조용하게 간수하지 못하여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습니다. 그분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둘째가 소리 질렀을 때에는 참 당황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맘충이라고 질타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봐도 자꾸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야! 조용히 해."보다는 보호자인 제게 "아이들이 좀 시끄럽네요."라고 완곡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생판 처음 보는 아이들 앞에서 "아이 씨"하며 아이들을 노려본 것은 어른다운 태도는 아니지 않나?
한 동네에 7년을 살면서 이웃과 이런 일은 처음 겪어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기에 아이들 관련해서는 다소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저의 예의범절 기준이 다소 완화되었던 것이라면 바짝 긴장해야겠지요.
불미스럽다면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서 생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게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말소리가 남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