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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May 09. 2023

달이 바뀌고, 달력을 넘기고

우리집 식탁에는 탁상 달력이 있습니다. 사무실 제 책상의 한 켠에도 탁상 달력이 있습니다. 매월 초 제가 꼭 하는 일은 달력을 새로운 달로 넘겨 놓는 것. 식탁에 놓인 탁상 달력에는 남편의 휴가 일정, 아이들의 소풍이랑 참여수업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회사에 놓인 탁상 달력에는 중요한 미팅, 필수교육 수강 일정, 잊지 말아야 할 업무 일정 등이 적혀 있지요. 달력을 참으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5월을 맞이하여 4월에서 5월로 달력을 넘겼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여 5월이 오는 것을 반기는 편입니다. 5월은 제게 초여름의 기분 좋은 상쾌함, 푸르름을 떠오르게 합니다. 게다가 간간히 끼어 있는 빨간 날은 생각만으로도 활력을 샘솟게 하지요. 



그런데 며칠 전 달력을 넘기면서는 벌써 5월이라는 것이 괜스레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훌쩍 다가와 버린 5월이 마냥 반갑다기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 밀어내고 싶었습니다. 2023년 올해가 벌써 중간지점까지 와버렸다는 것.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는 사실을 달력을 넘기며 가감 없이 직면해 버렸습니다.



지나가는 시간을 미련 없이 그냥 훌훌 보내버리기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초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여태껏 이룬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보낸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럼에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은 아이들이 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버리는 저의 시간이, 누군가의 성장으로 채워진다는 게 내심 흐뭇합니다.



아이들이 성장이 눈에 띄게 느껴지는 순간은 드뭅니다. 오랜만에 찾아간 소아과에서 키를 쟀는데, 이전보다 훌쩍 커 있다거나. 이전에는 못 하던 자동차 그리기를 해낼 때. '이런 말도 쓸 줄 알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어른스러운 낱말을 내뱉을 때. 매일 밥 차려주고, 목욕시키고, 재우는 일상 속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 같던 아이들의 성장이 목도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위로받습니다. 아,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고 있구나. 그저 때가 되면 물을 줬을 뿐인데.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 엄마 노릇인데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새로운 달을 밀어내고 싶은 마음은 조금은 접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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