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데 수년이 걸렸다. 미용실에서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기에, 내 못난 광대와 턱과 콧대와 입술선을 보지 못한 채 머리를 자르면 더 못난 모습이 될까 싶어 무서웠다. 거울 앞에 서서 길게 늘어진 머리를 턱선까지 접어 올려보고, 미묘한 한 끗 차이에 안심했다 찡그렸다 머리께로 들어 올린 팔이 저릴 때까지 서있어도 보다가, TV 속 단정한 머리칼의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그러다 거울 앞에 다시 서서 다시 부러워하길 반복했다.
미용실에 가던 그날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 한참 유튜브며 SNS 해시태그에 숏컷, 숏컷 잘 어울리는 얼굴형 따위를 검색하며, 관련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상들이 나올 때까지 스크롤을 움직였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을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다시 자랄 것인데.
얼굴이 작아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인데.
내가 하면 더 나이 들어 보일 것 같은데.
정말 안 어울리면 다시 길 때까지 매일 어떻게 하고 다녀야 하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엉킨 긴 머리를 빗어 내릴 뿐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에 끈덕지게 달라붙은 자기혐오는 고작다시 자라나는 단백질 한 줌에도, 나를 쩔쩔매게 만들었다.
의식하지 못한 새 뜨겁게 달궈진 핸드폰이 경고음을 냈다. 그 빨간 표식을 보고서야 나는 타인의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침대 위로 핸드폰을 던졌다. 손에 밴 열기가 가시자 피를 머금은 손끝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손톱이 자라 생기는 하얀 줄을 견디지 못했다. 손톱이 더 이상 살과 맞닿지 않는 지점. 오롯이 손톱의 색이 드러나는 순간이 어쩐지 참을 수 없이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 번 손끝을 의식하고 나면 나는 기어코 반대손 엄지손톱으로 다섯 손가락의 손톱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만다.
겨우 1mm 남짓한 손끝의 하얀줄도 가차없이 찢어 내다버리는 주제에 머리칼에겐 아깝다라는 불공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등허리에 와닿는 머리카락에도 스스로 못난 모습이라 하면서, 짧아진 머리에 더 못난 모습이 될까 봐 두려워하다니. 결국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옷을 걸치든 간에 내게 나는 부족할 터인데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꼴이 아이러니해서,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음날 나는 바로 미용실로 향했다. 걱정은 길지만 행동은 순간이었다. 미용실 의자에 앉자 설레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상가 건물 창문에 비친, 부쩍 짧아진 단백질 한 줌을 보니 마치 어디엔가 둥둥 떠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별것 아닌 일이 하나 더 생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