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말 누구였을까?
가을 저녁 바람이 선선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집 근처 공원을 세 바퀴 돌고 가로등 불빛 아래 늘 앉던 벤치에 앉았다. 무심한 표정을 한 여인이 내 앞을 무심히 지났다. 그리고 한 오초 남짓 지났을까.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한 번도 맡아보지 않은 향수였다. 방금 내 앞을 지나간 여인의 잔향이었다.
며칠 전 거리에서 어딘가 낯익은 중년 여인이 내 곁을 스쳤다. 분명 그 여인과는 어디선가 마주쳤거나 잠깐의 인연이 있을 터인데 그 시공간의 인연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저 선한 인상의 여인을 어디서 만났을까? 자주 가는 마트에서, 도서관이었나, 혹은 자유로이 공원을 어슬렁거리던 댕댕이의 주인이었나?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여인과 연결되는 접점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세수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가벼운 운동을 하다가도 문득 뇌리 속의 그 여인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점유했던 시공간의 어디에도, 그녀와의 연결점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쯤 되니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그녀는 여전히 내 의식 속의 한 곳에 자리 잡은 채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제 그만 뇌리에서 사라져 주시기를...대답할리 없는 그녀를 향해 간절히 부탁을 했다.
하루가 더 지나서 공원을 거닐던 중 바닥에 떨어진 은행알을 하나 밟았다. 지독한 은행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순간 그토록 알고 싶던 그녀와의 인연이 기억났다. 가끔씩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던 한 복지관 경로식당의 노인 일자리 어르신 중 한 분이었다. 그제야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던 뇌리 속이 상쾌해졌다.
그런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관계의 기억은 더 남아있었다. 그것은 더 긴 시간의 심연의 갑갑함이었다. 삼 년 전부터 내 의식속에서 존재하던 다른 여인이었다. 지긋한 연배의 그녀는 하늘색 가디건을 걸쳤다. 작고 갸름한 얼굴에 선한 인상이었다. 흰 백발이었고 체구는 작았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세상에 없는 상상속의 여인은 아니었다.
여전히 미스터리 한 그녀는 과거의 나와 어떤 인연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