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모임 '시청파' 네명이 함께한 서촌, 그리고 길상사 나들이
나는 성남에 사는 경기도민이다. 지난 토요일(9일) 경기도민인 나는 오랜만에 걷기 모임 '시청파' 회원들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오늘 나들이 목적지는 서촌(라 카페 갤러리)과 길상사다. 집을 나와 서울행 지하철로 향하는 마음이 들뜬다. 옷을 차려입고 집 밖을 나서야 한다는 귀찮음이 설렘으로 바뀐 것은 한순간이었고 그 순간은 어제 오후 세시였다. 경기도민의 서울 나들이는 남다르다. 여수나 부산만큼 멀지는 않지만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도 직장이 서울이 아니라면 서울 나들이는 반나절과 세 뼘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늘 서울 나들이는 경기도민이자 성남시민 <시청파> 멤버 네 명이다. 모임 이름이 '시청파'인 까닭은 멤버들이 모이는 장소가 주로 성남시청이기 때문이다. 걷는 모임 시청파는 하는 일도, 나이도 다르지만 시와 소설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한다.
"착한 사람은 천국을 가지만 걷는 사람은 어디든 간다."
오늘 서울 나들이 일정은 두 개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촌 '라 카페 갤러리', 그리고 길상사다. 서울행 지하철엔 빈자리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하철은 목적지인 경복궁역까지 두 번을 갈아타는 동안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시간 반 남짓 가는동안 서서 가야 했다.
마침내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서울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완전한 푸르름이다. 박노해 사진전이 열리는 '라 카페 갤러리'를 가는 길에 한강 작가와 인연이 있는 서점 '책방오늘'이 있었다. 다른 오늘이 찾은 책방오늘이다.
서촌으로 가는 멤버들의 발걸음이 두서없다. 발걸음 닿는 곳곳마다 소박하면서 생경한 서촌의 이색적인 풍경들이 저마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내 시선은 서촌의 집과 골목에 집중했다. 여기는 내가 사는 동네와 비슷한 듯 달랐다.
거대한 3D프린터로 복사해 놓은 것 같은 우리 동네의 집이나 건물과는 달리, 여기 서촌의 집과 건물은 저마다 고유한 형태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 차이는 다름이지 틀림은 아니다. 나는 우리 동네의 경사진 언덕과 좁은 골목과 그리고 낡은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애정한다. 여기는 다른 오늘, 다른 세계였다.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한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 여성 두 명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경복궁 돌담길을 거닌다. 소규모 갤러리, 카페와 공방, 세탁소와 선술집도 독특한 외관이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은행나무 등 종류가 다양했고 으슥한 골목과 담장에서 피어난 꽃과 식물들은 화려함과 수수함이 공존했다.
서울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인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리는 '라 카페 갤러리'를 찾았다. 라 카페 갤러리는 이 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라 카페 일층에 카페가 있고 이층 갤러리에서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박노해 사진전 「다른 오늘」은 2024년 8월 30(금)일부터~2025년 3월 2(일)일까지 열릴예정이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라는 필명이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엄혹한 시기에 사형을 언도받은 한 혁명가의 신념이 이름이 되었다. 한 혁명가의 신념이던 사노맹과 노동의 새벽은 서촌의 한 카페에서 다른 오늘이 되었다. 한 인간이 사형을 언도받는 것은 어떤 두려움과 공포일까. 하지만 박노해 시인은 사형을 언도받는 상황에서조차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전시된 사진 중에서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라는 문구가 맘에 들었다. 나직하니 두세 번 곱씹어 본다.
시청파 모임의 리더인 A선생님이 "우리는 넷이니까 충분하지?"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나니 은근 허기가 진다. 근처 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을 먹었다. 막걸리도 한잔 곁들였다. 부추와 양파가 잘 버무려진 꼬막, 김, 콩나물, 그리고 잡곡밥과 어우러진 비빔밥 맛이 일품이다. 비빔 도구는 젓가락이다. 먹을 것 없는 성찬보다 허기가 더해진 소박한 찬들이 훨씬 더 맛있고 나를 살찌운다.
힘겨운 택시 잡기, 그리고 소란스럽던 길상사의 오후
복병을 만났다. 길상사를 가는 노정이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택시를 잡기로 했다. 하지만 도로의 택시는 모두 예약 중이다. 손을 흔들었다. 어느 택시 기사도 거리에서 우리를 위해 택시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길 잃은 고아처럼 동동거렸다.
"택시 어플 있어?"
"아니."
"한 번도 안 써 봤어."
아날로그에 멈춰진 시간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택시 어플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멤버 중 한 명이 급하게 택시 어플을 깔았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겨우 택시를 예약했다.
이년 만에 다시 찾은 길상사의 오후는 따스하고 화사했다. 오늘의 날씨는 기상 캐스터가 전하는 이 가을의 화창함 주의보였다. 하지만 오늘 찾은 길상사는 조금은 혼란스럽고 수다스러웠다. 고요하고 한적했던 이 년 전의 풍경과 달리 오늘의 길상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요함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예기치 않았던 소란스러움이 낯설었다. 이곳도 다른 의미로 '다른 오늘'이었다.
나만 알고 있던 맛집이 더 이상 나의 맛집이 아닌 기분이랄까. 특히 자리는 넓지만 사람들로 꽉 차서 빈자리가 거의 없는 카페에 들어섰을 땐 길상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카페에서 파는 음료는 저렴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맛있었다.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지하철은 여전히 만원이다. 그럼에도 오늘 나들이는 무조건 행복하고 즐거울 거란 다른 오늘이었다.
<세줄 요약>
1. 경기도 성남에 사는 걷는모임 <시청파>멤버 네명이 서촌, 박노해 사진전 관람, 길상사 나들이를 함.
2. 사진전 관람후 먹은 꼬막비빔밥이 맛있었음. 길살상를 가는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았음.
3. 길상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고 아메리카노 맛있었음. 다른 오늘 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