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찾아서
많은 한국인들이 젊었을 때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그들을 재외동포라고 부른다. 그들은 교육, 경제적 기회, 자유로운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은퇴를 맞이하면서 재외동포중 일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선택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 내외도 캐나다에서 살다가 몇년전 여생을 보내기 위해 귀국을 했다. 고향의 정서, 언어적 편안함, 비교적 저렴한 생활비가 이유로 꼽힌다.
특히 대한민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귀환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은 비교적 낮은 보험료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제공한다. 응급실이나 전문의 진료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고, 고액의 수술·치료에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수 있다. 미국처럼 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일이 드물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장점은 재외동포 은퇴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작용하며,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강력한 동기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귀환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마냥 따뜻하지 않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건강보험 제도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에 기여하지 않고 해외에서 살다가, 나이가 들어 병원 이용이 많아질 시점에 돌아와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꾸준히 납부해 온 보험료에 기댄 채 혜택만 누리려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무임승차’ 논란도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가수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다. 그는 전성기 시절 군 입대를 약속했으나, 막판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의무를 회피했다는 이유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시민권 취득이 개인의 선택일 수 있으나, 한국 사회에서 병역은 공동체적 책무의 상징이었기에 ‘책임은 회피하고 혜택만 누리려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20년 넘게 한국 입국이 금지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해외 이민 후 귀환을 원하는 일부 한국인에 대한 비판적 시선 역시 이와 닮아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경제적·제도적 혜택을 누리다가, 나이가 들어 의료 서비스가 절실해지면 한국으로 돌아와 혜택을 보려는 모습이 유승준 사건과 겹쳐 보이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를 존중받을 수는 있으나, 그 선택이 공동체적 책임을 외면한 결과라면 비판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환 이민자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는 한국의 다양성을 넓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는 후세대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일부는 해외에서 축적한 경제적 자원을 고향 사회에 환원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어 다시 고향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의 매력과 안정성을 방증하는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재외동포의 귀환은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 절벽을 맞이하고 있다. 해외에서 거주하던 동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다면, 단순한 인구 유입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적 자원이 한국 사회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귀환 동포 2세·3세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활동한다면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책임과 권리의 균형에 있다. 귀환 이민자들의 긍정적 자산을 한국 사회에 잘 녹여내면서도, 제도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일정 기간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 혹은 해외 거주 기간에 비례한 조건을 마련하는 식의 개선책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에서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