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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사고후 뒷목 잡던 그 남자

자동차 보험 사기, 제도가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

by 김인철

<선요약 다섯줄>


남한산성에서 중앙선 침범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다.

정비소 직원은 보험금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팁’을 제안했으나 운전자는 거절했다.

운전자는 과거에 경미한 접촉사고로 상대가 과도하게 보상금을 청구한 경험을 했다.

한달 후 다른 사고에서는 상대가 명함만 받고 연락하지 않아 오히려 인간적인 여운이 남았다.

운전자는 돈보다 양심을 선택하며 “자동차 보험 사기 제도가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를 남겼다.




8년 전이다. 바람이나 쐴 겸 해서 자동차로 남한산성을 오르던 중이었다. 산성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었다. 굽이진 산성 도로를 내려오던 차량과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도로를 내려오던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내 차의 왼쪽 범퍼를 받았다. 오르막길이라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다친 사람도 없었고 차도 많이 부서지진 않았다. 하지만 내 차의 왼쪽범퍼는 도장면이 벗겨져서 도색을 새로 해야 했다. 사고를 낸 차는 고급 외제차였다. 그 차량 운전자는 나이가 일흔쯤 되는 어르신이었다. 조수석에는 비슷한 연배의 여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수술을 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남한산성 접촉사고


미안해요. 햇빛 때문에 순간 차를 보지 못했어요.


도로를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고 현장 사진을 찍은 다음 차를 가까운 갓길로 뺐다. 차량 운전자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내 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아내)는 복잡하게 보험 처리하지 말고 '오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건네며 합의하자고 했다. 내 입장에선 보험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보험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차주는 한번 더 부탁을 했지만 나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내가 몸이 안 좋다며 양해를 구하더니 내게 연락처를 알려주고 먼저 저리를 떴다.


나도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보험사 직원이 바로 왔다. 그는 사고 영상이 찍힌 '블랙박스'를 확인하더니


"상대방 과실이 명백하니 내일 정비소 가서 차량 상태를 점검하고 수리를 의뢰하면 상대차량 보험사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다행히 사고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주 가던 정비업체가 있었다. 바로 정비업체로 향했다.

"범퍼는 안 갈아도 되지만, 도색은 새로 해야겠네요. 도색 비용은 현금으로 하시면 25만 원인데 보험으로 하실 거면 부가세등 포함해서 30만 원 조금 넘을 거예요"


네? 자동차 수리비 외에 일부 '현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요!


여기까지는 자동차끼리 접촉사고가 났을 때 일반적으로 보험을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정비소 직원이 '좋은 팁'을 알려 주겠다며 접촉사고가 났을 때 보험료를 청구하는(?) 이러저러한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처음엔 직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보험료 중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다는 뜻이었다.


직원의 말을 이해하고 보험료를 재빨리 계산했다. 도색을 하고 나서도 얼추 '십오만 원'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비소 직원의 뉘앙스를 보면 이런 사고가 나면 다들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나도 직원의 말에 혹했다. 하지만...


"그냥 보험 처리할 테니 깔끔하게 도색만 해주세요."


정비소 직원은 자기가 알려준 '좋은 팁'을 마다하고 보험처리만 하겠다던 내가 의아했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급히 차를 쓸 일이 없어서 차량 렌트도 안 한다고 했더니 교통비 입금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뒷목 잡고 병원에 드러누웠던 그 남자는 잘 살고 있을까?


오래전에 접촉사고를 냈던 일이 떠올랐다. 업무 특성상 차가 필요했다. 차가 필요할 때마다 남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피곤했다. 고민 끝에 중고차를 구입했다. 차를 구입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다. 퇴근길에 마주 오던 차량과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그날은 퇴근이 늦었다. 늦은 밤이었고 비가 오는 언덕이었다. 길 양쪽에 차들이 주차가 되어있어서 언덕을 오가는 차들이 서로를 비껴가기가 아슬아슬했다. 언덕을 오르던 중이었다. 마주 오던 차와 내 차가 부딪힐 것 같아서 언덕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백미러로 보니 차를 움직이면 뒤 범퍼끼리 부딪힐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둘 중 한 명은 차를 움직여야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백미러를 확인하며 조심조심 차를 앞으로 움직였다.


접촉사고.png 챗지피티_비오는 골목길 접촉사고


좁은 길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주차를 시킨 후 집에서 쉬고 있었다. 삼십 분 후 경찰관 한 명이 집에 찾아왔다. 내 차량번호를 대며 차주가 맞는지 확인했다.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뺑소니는 아니라고 했다. 경찰서 입구 쪽에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차량을 확인했다. 구형 소나타였다. 뒤 범퍼 쪽에 살짝 긁힌 흔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어둡고 비가 와서 부딪혔는지 몰랐다고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는 다음날 차량을 정비업소에 입고시키더니 오후엔 뒷목을 잡고 아예 병원에 드러누워 버렸다. 당시 대인/대물 합해서 손해액이 280만 원 정도 나왔다. 보험 사기까지는 아니라도 당시 그의 행동은 정말 너무했다.


그는 왜 내 명함만 받고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접촉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다 가시기도 전이었다. 퇴근 후 주차를 하던 중 나는 다시 한번 접촉사고를 냈다. 후진주차를 하던 중 뒤에서 오던 차를 보지 못하고 경적 소리도 듣지 못했다.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에는 봉고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켠 채 멈춰 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차에서 내려 얼른 양쪽 차량 상태를 확인했다. 어두운 밤이어서 잘 안보였지만 내 차도 상대방 차도 긁힌 흔적만 조금 생겼다. 봉고차 운전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경적 소리를 못 들었냐"라고 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금 내가 바쁘니까 명함이나 주세요. 내일 연락할 테니."

"네, 꼭 연락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명함을 받은 사내는 급히 차에 올라타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불안한 심정으로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연락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내 명함만 건네고 상대방 연락처를 받지 않아서 내가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 뒤로도 연락이 없었다.


자동차 보험 사기, 제도가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


몇 년 전 일이지만 한 달 간격으로 벌어졌던 접촉 사고 두 건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했다. 그날 뒷목을 잡고 병원에 드러누웠던 그 사내도 나처럼 정비소 직원의 조언을 받았거나 자동차 보험을 잘 아는 지인에게 <좋은 팁>을 들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한 달 후 있었던 접촉사고에서 사내는 왜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내가 준 명함을 잃어버렸거나 가벼운 접촉사고였으니 그냥 용서(?)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전자의 경우는 엄연히 편법을 가장한 자동차 보험사기다. 제도가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


정비소 직원은 나를 보더니 사고접수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한번 "돈은 필요 없으니 보험으로 처리하고 도색만 깔끔하게 해 달라"라고 했다. 무엇보다 몇 푼 안 되는 돈보다는 '남한산성에서의 평화로운 오후'를 망쳐버린 이번 사고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정비소 직원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음날 범퍼가 깔끔하게 도색된 차를 인도받았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상대 차량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보험처리 잘 마무리했습니다. 차량은 렌트를 하지 않으셔서 하루치 교통비 20,000원 고객님 계좌로 넣어드릴 예정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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