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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May 16. 2024

God, don't give up on me yet!

<조각난 하얀 십자가>를 읽고

글 신시아 라일런트

문학과 지성사


'조각난 하얀 십자가'라는 제목 때문에 계속 읽기를 망설였었다. 이제는 성숙한 어른답게 무엇에도 맘 상하지 않고, 또 의연히 어떤 의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고, 나와 다른 의견에는 내 눈과 귀를 빌려 주고 싶지 않은 옹졸함이 내 현주소다. 이 자그마한 책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계속 째려봤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신앙이 특별한 피터는 동네에 부흥사로 온 목사에게 온통 마음을 뺏기고, 자신은 '구원' 받았노라 여긴다. 한때는 신앙이 있었던 부모님과 '골수 무신론자'인 베프 루퍼스는 피터를 이해하지 못한다. 부흥회가 끝나갈 무렵 이 신비한 목사는 피터에게 같이 떠나 자신의 목회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고, 피터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승낙한다. 찬찬히 짐을 싸며 작지만 소중했던 것들과의 이별에 아쉬워하지만, 피터는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는 소명감으로 가득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러나 목사는 새벽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피터를 그냥 보낼 수 없었던 루퍼스가 그 새벽에 나와 피터를 지켜보다 집까지 데려다준다. 동네에는 목사가 마을 슈퍼마켓 여자 점원과 도망갔다는 소문만이 무성하다. 목사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에 대한 실망 등 복잡한 감정 속에서 '지옥' 같은 날들을 보낸 피터는 눈을 들어 자신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보게 되고 절교 상태로 지냈던 루퍼스와 화해한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뉴베리상 수상작들의 공통점은 '성장'이다. 괜찮은 어른을 만난 아이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훌쩍 맘이 큰다는... 그런데 이 이야기는 괜찮지 않은 어른을 만나 열병을 겪은 아이가 성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괜찮지 않은 사람이 하필 목사여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요즘 세태를 돌아본다면 이 정도는 양반인 목사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도 해 본다.


피터가 하는 독백을 통해 작가가 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십자가 조각은
목사가 아니라 나였다.
그 조각들은 나였고, 하나님이었고,
내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조각들을 내버릴 수 없다.
그 조각들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결국 끝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였다.
나에게 그 목사는 이미 지나간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바로 여기,
바로 앞에 계신다.


참 아름다운 성장이다!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본다. 내 신앙은 사람을 주님과 나 사이에 두고 마치 그 사람 뒤의 후광이 그의 것인 줄로 착각하고 바라보았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결국 조각난 하얀 십자가의 정체는 깨져버린 믿음이 아니라 여전히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복잡하게 널려 있는 '나'라는 존재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각나서 어지럽게 널려있는 '나'를 맞추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시는 분이 계시다. 그 퍼즐을 다 완성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맞춰본다.




정말 오래전에 쓴 감상문이다. 오늘 이 책이 생각난 이유는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어느 젊은 목사의 비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기독교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보았고 들었음에도 여전히 괜찮지가 않다. 왜 그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왜 그는 자신이 전한 대로 살지 못했는가? 그의 거짓말과 위선에 화가 치밀었지만 이내 따라오는 감정은 슬픔이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사람들의 찬사에 둘러싸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타락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거룩하게 나를 지킬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죄'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죄를 가벼이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책임과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나도 산산이 조각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있는 죄인이다. 각자의 앞에 깨진 십자가를 두고 누가 누구를 욕하고 탓한단 말인가... 십자가가 깨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되길...

https://youtu.be/dVz6yimuTgU?si=egfoldPh5ejGJM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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