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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Jan 18. 2021

나에게 주어진 하루

고단하고 외롭지 않기 위한 나의 독백




Maxfield Parrish, <Moonlight Night, Winter>, 1942, 49.2 x 40 cms, oil on paper, Philadelphia




아름다운 삶을 그려보다가 아름답지 않은 현실에 냉담하곤 한다. 


나는 만능이 아니기에 모든 것들을 해낼 수가 없었고, 해내지 못한 것들이 나에게 짐으로 남았지만 나는 그 짐을 풀지 않고 마음 한 켠에 쌓아 둔 채로 그렇게 살아왔다.


몰랐었다.


그 짐을 풀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게 될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현실은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 현실에서 더욱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고, 그 평범함마저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언을 듣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비범한 것은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고, 특별한 것을 추구하다가는 일상의 행복을 다 잃고 후회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


특별한 내 자신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계속 특별해지고 싶고 소중해지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곁에 사람도 줄어들고, 나만의 고유한 색깔도 빛이 점차 바래지면서 나 스스로도 특별함을 점점 포기하게 된다. 그나마 격렬한 하루의 끝, 아이를 마저 재우고 난 한 밤중의 이 시간만이 특별한 나의 숨을 붙어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가끔 호젓한 생각을 하면 내 자신이 낯선 곳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위안을 얻기도 한다. 비포 선라인즈의 한 장면,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늦은 밤 오크 통 위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 드는 도시의 돌바닥의 냄새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어딘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아쌀한 찬 기운이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처음 본 두 사람의 팽팽함 긴장감과 그럼에서 불구하고 미친듯이 끌리는 느낌을 거부할 수 없는 적당한 두 사람의 거리. 적당한 거리를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과 서로를 향하는 시선, 그리고 서로의 입술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서로의 가치관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은 서로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이 섣부를 것 같아서 얘기하지 못한 채 입 안을 맴돌고 있었다.


이 장면이 가끔 이상하게 내 머릿속을 온통 사로잡을 때가 있다. 이상하게 나의 청각과 후각이 이 장면을 나의 깊은 두뇌 속에 잠식시켜버렸는지 가끔 외로울 때마다 나는 이 장면을 머릿속에서 꺼내본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대체 나에게 언제부터 함께 했었는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시기에는 외로움이라는 단어 자체를 써 본 적이 없었다. 가을을 마주할 때 쓸쓸하다는 마음은 느껴보았지만, 혼자가 되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정말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재수를 하기 위해 부모의 품을 떠나 일년 가까이를 혼자 살 때 나는 처절한 외로움을 알게 되었고, 내 굶주린 영혼은 이 외로움의 맛을 느껴버리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습관적으로 외로워했던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오는 길은 외로웠고, 많은 대중 속에 군집을 이루고 있어도 나는 외로웠다. 석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혼자 기숙사에 살게 되는 시점, 만 서른 살의 직전에는 정말로 이 외로움은 거의 병적으로 심해져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홀로 운치있게 즐기는 법을 알게되고, 바람이나 물소리 같은 자연에서부터 오는 소리만이 나의 고요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정말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석사 2년의 기간은 정말 내 영혼이 산자락에서 하염없이 쉬고 또 쉬면서 세상의 때를 벗어냈던 시간들이었다. 결혼을 하고난 이후에도 사회에서의 관계 결벽증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쉬이 누구에게 마음을 터놓지도 못하며 공적인 공간에서 또 외로워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마음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데 겉으로는 마치 식어버린 한 줌의 재와 같이 보이려면 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 


공적인 공간, 사무실, 오피스.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게 아니라 나는 말만 들어도 외롭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써먹을지 알수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이 곳. 나는 몇 번이고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을 했다. 내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 마음은 진심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무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또 퍼져나가고 마음은 그렇게 이용되었다. 어이없지만 서로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돋보여야 하고 다른이의 단점은 부각되어야 하는 것. 그것이 저 공적인 공간에서의 행위 전부 아닌가. 정보를 얻기위해서 서로 친밀하게 지내고, 서로의 속내를 캐기 위해서 집요한 캐쥬얼 토크로 빈틈을 파고드는 모든 것.


메스껍고 그리고 외롭다. 진심을 알지 못해서 혼란스럽고, 사람을 믿지 못해서 괴롭다.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믿을 수 있어서 서로 교감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아득하게 여길수만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회사가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길 바라는 어떤 지나친 이상적인 생각의 일부분일 뿐, 회사는 나에게 어떤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삶, 거창하게 생각하면 모든 과정들이 고단한 여정이 되기도 하지만_

그 끝에는 달콤한 휴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의미있게 살고 싶다.

정말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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