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정수가 시작된 그 시점
그리스 문명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미케네 미술이 어디에서부터 이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후 대략 기원전 천 년 경에 험준한 반도 해안까지 유럽의 여러 호전적인 종족들이 침투하여 그리스 반도의 원주민을 정복했다. 이렇게 일구어진 그리스 종족은 어느 한 사람의 통치를 받지 않고 섬에 흩어져 각각의 도시에 정착하며 살았다. 처음 그리스를 지배했던 초기, 그들의 문화는 조잡하고 원시적이며 자유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스파르타 인들은 도리스 족속이었고, 그들은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건축물을 지었다. 우리가 그 목적하는 바를 알 수 없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아티카의 아테네가 있다. 미술사에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혁명은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6 세기의, <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고대 이집트의 석상과 첫인상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새로운 것을 모색했다. 뚜렷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두 발이 모두 땅에 닿지 않았을 때 더욱 생동감이 있다는 것과 입꼬리를 약간 들어 올릴 때 더욱 얼굴에 생기가 돈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화가들도 조각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본받아 자신만의 발견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두 눈을 의지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을 발견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발을 정면에서 본 것을 그리는 시도를 감행하였다. 발을 앞으로 보는 것이, 인체를 화병의 표면의 곡면에 맞추어 사이즈를 다르게 그리는 것이 뭐가 어려운 것인가 의아해지기 시작한다면, 다시 고대 이집트 미술로 돌아가 그 엄격한 규율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그리스 미술의 새로운 바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와 때를 같이한다. 그리스 시민들은 편견 없이 과학과 철학에 대해 논쟁했고, 디오니소스의 축제로만 여겨졌던 연극의 굴레를 확장시켜 발전시켰다.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할 때, 아테네는 페르시아 침략을 물리치고 페리클레스(Pericles)의 지도 아래 도시를 재건했다. 페리클레스가 신전 건축은 건축가 익티노스(Iktinos)에게, 신상은 조각가 페이디아스(Pheidias)에게 일임했다.
익티노스가 설계한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우리의 눈에 남아있지만, 그 위대한 페이디아스의 명성은 상상으로만 남아있다.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고 성경이 우상숭배를 통렬하게 비난하면서 이교도의 신상은 어느 것이나 때려 부셔야 하는 신성한 의무수행 때문에 페이디아스의 작품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수많은 박물관에 소장된 대부분의 조각품들은 로마시대에 정원이나 대중목욕탕을 장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복제품이다. 공허하고 눈동자의 숨결이 없는 것 같은 차가운 대리석상은 그리스 시대의 조각을 복제한 이미지이다. 그리스 조각이라고 하면 우리는 하얀색을 떠올리지만 이것은 로마시대 복제품의 이미지일 뿐,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하얗고 고운 대리석의 결에 과감하게 강한 대비 색들로 채색을 했다.
페이디아스의 조각상은 강렬하고 화려했다. 색깔 있는 돌로 강조한 눈동자는 신전을 들어선 사람에게 무시무시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페이디아스가 만든 신상은 신의 성격과 의미에 관해 전혀 다른 관념을 갖도록 하는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만든 아테네 여신은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페이디아스의 조각상은 모두 사라져 남아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델포이에서 발견된 그리스 조각상을 한번 살펴보자. 눈동자는 생기가 있고 눈과 입술에는 약간의 도금이 되어 있어서 얼굴 전체는 풍요로운 느낌을 띄고 있다. 실제의 느낌을 주기 위해 인간 형태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과거의 엄격한 규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 미술이기에 후대 미술가들은 종종 영감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 걸작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또한 그리스인들이 중시한 것은 인물의 배치, 구도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함으로써 '영혼의 활동'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조각에 생명의 입김이 불어진 것은 인간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 있다. 조각상을 그저 아름다운 배율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는 아니었다. 조각은 실제를 담아야 하고 그 캐릭터를 표현해야 했다.
OPINION
이제 우리는 로마시대의 대리석상을 보면서 그리스 조각을 상상으로 한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눈동자의 색을 그려 넣고, 두 뺨에는 가벼운 홍조를 집어넣어 생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무언가 완벽한 얼굴의 선이 아닌 조금은 투박하지만 조금 더 인간적일 수 있는 라인을 한 번쯤 다시 그려보자. 무결점의 새하얀 대리석상, 손댈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그 차가운 살갗 위에 거침없는 색을 입혀서 신보다는 조금은 더 천박하지만 솔직함이 있는 인간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고상하고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은 무결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라인과 배율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색상을 입어도 무언가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는 대상이 있고, 아무리 무채색의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한다 한들 그 우아한 겉모습 이면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대상도 있다. 그리스 미술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망치로 내려칠 때마저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이 있을 것 같은 저 중심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