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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Mar 27. 2021

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2막

Cover of June 15, 2020, issue of Time, featuring Analogous Colors (2020) by Titus Kaphar




오랜만에 쓰는 감정에 대한 글이다. 그동안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글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깊은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 대며 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실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갖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해 보면 얼추 2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역할만 부모를 해냈을 뿐, 실제로 내 마음은 온통 과거에 머물렀음을 시인한다.


아름다움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이상한 착각에 시달렸다.

젊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화려함을 보며 무언가 후드득 나의 처지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지 않은 순발력에 직장에서 부끄러운 순간이 올 때마다 부서진 채 사라지고 싶었다.

노력한다고 노력을 해도 자유로운 사람들의 시간에 비하면 나의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수없이 적어 내려 갈 수 있다. 그동안 느꼈던 나의 심연을 나는 열 줄이고 이십 줄이고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만큼 강렬했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육아로 지쳐 힘들다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부모님과 남편의 조력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육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내 인생의 챕터 1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챕터 2가 화려하고 웅장하게 펼쳐졌는데 나는 여전히 챕터 1을 그리워했다. 챕터 1에 머물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시간을 보며 나는 그들과 경쟁하려고 했다. 지금 이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미래를 그려가고 설계하고 비교해야 하는데, 나는 과거에 집착했다. 지금 챕터 1에 있는 사람들도 10년이 지나면 나의 리그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럼 그들은 그제야 나를 이해하고 또 제2막을 살아가겠지. 내가 본부부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바로 30대 초반, 한창 아름다움이 피어날 인생의 제1막의 마지막 피날레와 같은 순간이었다. 당시 지금의 나와 같은 언니들을 보면서 말로는 공감했지만 머리로는 하나도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자리를 잡아야 했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으며 인정받아야 했다. 거침없이 살아갔던 그 시절이기에 1막이 끝난 지금도 나의 모습을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걸 지도 모른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 사랑하는 딸을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젠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다.


그만큼 나는 시간을 먹었고, 새로운 막을 열었다.


이젠 본연의 우울감을 털어내기 위해서 지금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고 한다. 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꿈을 꾸거나 혹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에 대한 꿈을 꾸고 싶진 않다. 지금 이 순간 5년 후 내가 정말 되고 싶은 모습을 그리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보고자 한다.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미술 전공을 병행하는 것은 하나의 도피처이다. 내 미래가 왠지 하고 싶은 것들로만 잔뜩 둘러싸여 있게 해주는 착각을 일으키는 도피처이다. 어쩌면 신기루일 수도 있는 이 환상으로 나는 지금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회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쓰여도, 회사에서 승진에 밀려도 나는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도피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정말 이 환상마저 깨어지는 그 순간,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이 들 때 나는 가장 무섭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고, 어쩌면 이 목표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렬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이 도피처를 더욱 견고하게 쌓아가고 싶다. 


'5년 후에 나는 작업실 한 개를 갖고 싶다.'


작업실에서 나의 그림을 그리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정말 행복하다. 그림이 인기가 많든 적든, 알려지든 안 알려지든 간에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공간을 남기고 싶다. 그 공간을 나로 가득 채우고 싶다.

이 비싼 서울이라는 땅덩어리 안에서 괜찮은 월세의 작업실을 찾는 것이란, 특히 어떤 소득이 없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란 참 쉽지가 않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시작해보고 싶다. 나의 마음의 도피처를 물리적인 공간으로 정말 만들어서, 그곳에서 나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홀가분하게 나올 수 있는 그런 공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인생의 2막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행복해하자.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은 시간이고, 그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자는 그 누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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