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준 Aug 15. 2022

자살이 그럴듯한 삶

톨스토이의 고백록 #1 - 삶의 정지

1. 입대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쓰고 가는 글. 좀 더 쉬려고 했지만, 이 글만큼은 꼭 다 완성시키고 싶었다. 그만큼 시간을 보내는 게 무료했던 것도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너무 사랑하게 된 책이다.

2. 글이 조금 길어질 것 같아 파트별로 좀 나눠봤습니다. 이 글의 제목과 결론이 책 전체의 결론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

3. 나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아아아주 행복하고, 내 인생에 있어 자살은 거리가 멀어도 너어어어무 멀다.
(그러니 독자분들께서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면 아주 많이 곤란함)


사람들이

손목에 칼을 대고,

목에 밧줄을 걸고,

입 안에 총을 집어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고, 그 후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자살을 안 하는 거지.

앞으로도 자살은 하지 않겠지만, 지금 나의 삶에서 희망이나 의미는 없다고 느껴져.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그렇게 해서까지 살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어.


다행히도 이 친구는 지금 대학생활을 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들은 순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살충동이 생각보다 흔하게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친구는 다시 그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런 감정을 그다지 느껴보지 못했지만,

나도 이따금씩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빠져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내 기준 가장 만족스럽게 설명해준 책을 최근에 읽게 되었다.

바로 톨스토이의 고백록이다.
이 책은 12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감히 올해 읽은 책들 중 최고의 책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책을 토대로 삶의 의미라는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톨스토이 또한 자살을 수차례 고민했다.

그가 자살충동을 느끼게 한 요소는 딱 하나였다.

바로 '삶의 의미'이다.

이 삶의 의미에 대해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고찰하고 연구하고,
과거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보지만,

그 길의 끝은 결국 자살충동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1880년.

1880년은 그야말로 톨스토이의 전성기 그 자체였다.

인생 최고의 작품,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출간한 이후였으며,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살충동을 느낀 것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내가 완전한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온통 둘러싸여 있던 때였다. 내가 쉰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나에게는 착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내와 반듯한 아이들이 있었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어나는 막대한 재산이 있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지인들로부터 예전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특별히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도 내가 유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년배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정신적 힘과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나는 이런 상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이 정지한 듯한 순간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순간이 금방 지나갔기 때문에 이전의 활력 있는 삶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순간은 더 빈번하게, 그리고 늘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 삶의 정지는 언제나 단 두 개의 똑같은 의문으로 나타났다.

'왜?' 그리고 '그래서 그다음엔?'이라는 의문으로 말이다.

그는 이 반복되는 삶의 정지의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것이 우연히 생긴 가벼운 병이 아니라 무언가 아주 심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의문들이 반복된다면 이 의문들에 답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답하려고 노력했다. 이 의문들은 매우 어리석고 단순하고 유치해 보였다. 내가 이 문제들을 건드리고 해결하려고 하자마자 이런 확신이 들었다.
첫째, 이것은 유치하거나 어리석은 게 아니라,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의문이다.
둘째,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의문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그들이 이 질문이 고리타분하고 유치하며 쓸데없다고 여긴다.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있는 가족과 돈과 인간관계와 쾌락이 더 중요하다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2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으나, 앞서 자살충동을 느꼈다던 친구도 어쩌면 지금 이들 중 한 명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확실하게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삶의 정지의 순간을 느낀 이후로 그는 그가 고민해온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주요 관심사였던 농지 경영에 대한 생각들 중 갑자기 이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래, 좋다. 너는 사마라현에서 6천 데샤티나의 땅과 3백 마리의 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져서 더 이상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때론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지 생각하다가 '왜?'하고 자문하고는 했다.
때론 '민중은 어떻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하고 자문하기도 했다.
때론 내 작품들이 나에게 가져다줄 명예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렇게 자문하곤 했다. 
'그래, 좋아. 너는 고골, 푸시킨,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등 세계의 모든 작가들보다 더 유명해질거야. 그래서 어쩔 건데!'
그리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 이후로 그는 자살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기 위해 교활한 수단들을 사용했다. 먼저 그는 혼자 있던 방에서 끈을 치워 버렸다. 장롱 사이의 횡목에 목을 매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한 총을 가지고 사냥하러 다니는 일도 그만두었다. 충동적인 행동을 어떻게든 억제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이 무서웠고,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삶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살충동을 어떻게든 억제하면서도 그는 삶 속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나의 모든 삶에도 어떠한 합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내가 애초에 어떻게 이것을 깨달을 수 없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가 이 모든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곧 여러 가지 질병과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나에게 찾아올 것이고(그리고 이미 왔다가 갔다), 악취와 구더기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위가 어쨌든지 조만간 모두 잊힐 것이고,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안달한단 말인가? 인간은 어떻게 이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 점이 정말 놀랍다! 삶에 취해 있는 동안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제정신이 들면 이 모든 것이 기만, 어리석은 기만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재미있고 재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삶은 그저 잔인하고 어리석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톨스토이의 고백록 제3장부터 4장 중반까지의 핵심 내용이다.

1장과 2장은 톨스토이의 방탕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책은 총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말인즉슨, 앞서 발췌한 톨스토이의 결론이 '삶의 의미'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한 그의 최후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이 질문에 대한 고찰을 아주 흥미 있게 그리고 공감되게 풀어가고 있다. 

3장과 4장은 그저 그의 인생을 건 질문에 대한 서두에 불과하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었는가?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두려워 이 질문 자체를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다행히도 톨스토이는 이 책의 끝에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완성시킨 이후로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방향'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었다. 

위대한 작가인 톨스토이가 작가로서 명성과 영향력이 정점에 있을 때에 부르짖은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길 바란다.



https://brunch.co.kr/@ehdwns8422/35


작가의 이전글 12가지 인생의 법칙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