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5년 만에 글로벌 소셜 미디어 반열에 오른 틱톡. 하루에도 수많은 밈(meme)과 챌린지가 탄생하는 이곳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콘텐츠는 무엇일까? 국가와 문화권별 다양한 트렌드가 있겠지만, 최근 내 관심을 끈 것은 현재 미국 틱톡커들에게 인기몰이 중인 <Fancy Like> 챌린지다.
<Fancy Like>는 컨트리팝 가수 워커 헤이스가 지난 6월 4일 공개한 앨범 <Country Stuff>의 수록곡이다. 간단한 코드로 이뤄진 중독성 강한 선율에 팝 요소가 더해져 듣자마자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흥겨움을 자아낸다. 특별한 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로맨틱한 가사는 노래의 매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Country Stuff - Walker Hayes
재미있는 사실은 곡이 발표되자마자 덩달아 어깨춤을 추는 기업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사에 등장하는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 애플 비스(Applebee's)가 그 주인공으로, 노래가 틱톡 유저들 사이에 바이럴을 타자 레스토랑 또한 때아닌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애플비스는 1980년 미국인 빌과 T.J 파머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개업한 캐주얼 레스토랑 체인이다. 지역별 메뉴 구성을 차별화하는 "Neighborhood Grill & Bar" 컨셉을 앞세워 점포를 늘려나간 애플비스는 합리적인 가격과 푸짐한 메뉴, 팬시(fancy) 한 분위기를 무기로 가장 미국적인 레스토랑으로 발돋움했다. 2007년엔 레스토랑 체인 아이홉(IHOP)을 소유한 다인 브랜즈 글로벌에 인수되며 세계 최대 캐주얼 레스토랑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IHOP & Applebee's (Credit : today.com)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애플비스는 침체기에 들어선다. 허리띠를 졸라맨 사람들이 더 이상 레스토랑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본사의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각종 사건 사고가 터지며 브랜드 이미지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애플비스는 음식에서 플라스틱 비닐이 발견되는 사건부터 시작해 성희롱, 노동착취 소송 등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이 터지며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밀레니얼 소비자를 잡기 위해 시도한 브랜드 리노베이션과 신메뉴 개발은 기존의 소비자들마저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다인 브랜즈 글로벌은 CEO를 전격 교체하며 브랜드 살리기에 나섰다. 초심 경영을 통해 충성고객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했으며, 달러리타(Dollarita, 1달러에 마실 수 있는 마가리타)를 선보이는 등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Neighborhood grill & bar" 슬로건에 집중한 것이다. 덕분에 2018년 첫 삼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하는 등 반등하는 듯했지만, 2019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며 또다시 고객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은 워커 헤이스의 신곡 <Fancy Like>를 만나며 단번에 역전된다. 틱톡 유저들을 중심으로 Fancy Like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자 애플비스를 찾는 고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애플비스처럼 팬시(Fancy)한 곳이 어디있어!?
2000년대 중반 아내와 함께 내슈빌로 건너 온 워커는 십수 년간 레이블을 옮겨가며 음악인으로서 커리어를 이어왔다. 하지만 종전 빌보드차트 최고 기록이 2010년 그의 첫 싱글 앨범 <Pants>가 기록한 '핫 컨트리 송' 차트 60위였을 만큼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진 못했다.
그러나 2021년 곡 <Fancy Like>는 그를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려놓는다. 딸 렐라와 함께 틱톡에 올린 댄스 영상이 유명해진 덕분이다. 흥겨운 선율과 가사에 맞춰 춤추는 부녀의 행복한 모습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fancylike dance (Credit : Tik tok - walkerhayesofficial)
이 영상은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는 틱톡커들에겐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6월 14일 공개된 워커와 렐라(Lela)의 댄스는 두 달이 채 안 돼 36만 개 이상의 챌린지 영상을 만들어냈고, 도합 수백만 조회 수(view)를 기록한 메가 트렌드가 되었다.
챌린지에는 경찰관부터 카우보이, 노부부, 전문 댄서, 심지어는 물개와 조련사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어느 한 틱톡 유저는 애플비스 앞에서 직접 춤을 추는 모습을 찍어 올렸는데, 때마침 애플비스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샤킬 오닐(전 LA 레이커스 농구 선수)이 카메라에 잡혀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뉴저지주 해밀턴에 위치한 애플비스 점포에선 직원들이 직접 나서 댄스 챌린지 영상을 찍어 올렸다.
Credit : Tik Tok @Fancylike
틱톡 챌린지가 유명해지자, 자연스레 워커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Fancy Like>는 발매 한 달 반이 지난 7월 24일 주차에 생애 처음으로 빌보드 핫 컨트리송 1위에 올랐고, 빌보드 전체 Top10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9월 12일, 발매 후 세 달이 지난 현재 워커의 곡은 빌보드 전체 Top 10에 진입하며 여전히 Fancy 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Credit : Tik Tok @Fancylike
워커는 빌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17살에 아내를 만난 이후 특별한 날에는 항상 애플비스 같은 팬시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라고 전하며 "언젠가 우리의 추억이 깃든 이 장소를 위해 곡을 쓰고 싶었다."라고 노래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했다.
We fancy like Applebee's on a date night~ got that Bourbon Street steak with the Oreo Shake!
애플비스 또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21년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비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 사태 발발 전인 2019년 동기와 대비해도 10% 높은 숫자다.
애플비스에게 이번 트렌드가 더욱 값진 이유는 틱톡 유저들을 중심으로 트렌드가 형성되며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릴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애플비스는 전형적인 캐주얼 다인인(Dine-in)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고,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도 가족 단위나 중장년층의 손님들이 많았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온드 미디어를 운영 중이긴 하지만, 이따금씩 올리는 포스팅과 차별화되지 않은 콘텐츠로 디지털 세대와의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pplebee's Grill & Bar
하지만 워커와 렐라로부터 시작된 댄스 챌린지는 애플비스를 현재 가장 매력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 틱톡 유저들은 레스토랑으로 몰려가 챌린지 영상을 찍기 시작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가사에 등장하는 오레오 쉐이크를 맛보기 위해 단종된 메뉴의 재출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CEO 존 시빈스키는 고객 경험을 위해 일시적으로 $2.99 오레오 쉐이크를 재출시했다.)
애플비스는 기세를 몰아 챌린저들의 영상을 모아 만든 TV CF 캠페인을 시작했다. TV 광고 분석 기업 iSpot.tv에 따르면, 광고 영상은 8월 23일 첫 공개 이후 지금까지 10억 회 이상 노출되었으며 그중 20%는 이례적인 흥행 트렌드를 소개하는 폭스뉴스와 CNN 채널에서 발생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Fancy Like 뮤직비디오는 현재 2000만 조회 수를 넘어섰으며, 애플비스 공식 채널에 올라온 다섯 편의 광고 영상도 도합 약 900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Get all “Fancy Like” | Applebee's Grill & Bar
CEO 존 시빈스키는 인터뷰를 통해 "이 곡은 가사 그대로 애플비스에서의 팬시한 데이트를 노래합니다. 음악은 우리 브랜드 DNA의 일부분입니다."라고 전했다. CMO 조엘 야신스키 또한 "애플비스를 찾아오는 수많은 고객이 워커의 노래처럼 팬시(fancy)한 데이트를 보내길 기대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틱톡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9월 6일 (현지시간) 글로벌 앱 분석 기업 '앱애니'의 분석 결과를 인용하며 미국과 영국 앱 사용자들의 평균 시청 시간에서 틱톡이 유튜브를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틱톡은 또한 2020년 페이스북을 제치고 소셜/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글로벌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앱으로 올라섰다.
젊은 유저들을 중심으로 틱톡이 사용이 활발해지자, 유튜브와 페이스북도 새로운 숏폼 서비스를 론칭하며 대응했다. 유튜브는 지난해 인도에서 처음 '유튜브 쇼츠'를 론칭한 뒤 올해 7월 100개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고, 페이스북은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 인앱 서비스로 릴스(Reels)를 선보였다.
유튜브 쇼츠 / 틱톡 / 인스타그램 릴스
그간 틱톡의 주요 타겟 오디언스가 10대라는 이유로 광고에 소극적이었던 기업들도 앞다투어 플레이어로 참가하는 중이다. 2021 틱톡 포 비즈니스 서밋에서는 수소 에너지의 선한 영향력을 알리는 현대자동차의 '#PositiveEnergyChallenge" 캠페인과 사용자들이 대면 거래 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당근하세요' 챌린지가 성공사례로 소개되었다. 특히 현대차 캠페인은 챌린지 제작 콘텐츠 91만 건, 브랜드 엠버서더 BTS가 제작한 음원 조회 수가 20억 회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대히트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 틱톡 채널이 공개한 BTS 챌린지 영상
대부분의 경우 브랜드가 캠페인의 기획자이자 시발점이 되겠지만, 애플비스의 경우처럼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한 싱어송라이터의 컨트리 음악에서 시작된 틱톡 챌린지는 브랜드와 오랜 기간 함께한 고객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새로운 세대의 고객들에겐 팬시한(fancy)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진화했다. 마치 어느 브랜드건 고객에게 진심을 다한다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커뮤니티로 발돋움한 틱톡. 수억 명으로 늘어난 사용자 만큼이나 넓어진 비즈니스/마케팅 기회는 브랜드 전략과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전장이 되고 있다. 향후 또 어떤 새로운 챌린지가 브랜드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게 될지 기대되는 이유다.